……내가 이만큼 성가신 놈이라 다행이지.
나디아가 베개에서 얼굴을 떼어냈다. 천에 눌려 있던 뺨이 천천히 드러났다. 피부는 열이 오른 탓에 붉었고, 미간은 깊게 모여 있었다. 평소의 무표정과는 다른 종류의 경직이었다. 불쾌감과 피로와 과도한 자극의 잔재가 한꺼번에 남긴 표정. 7은 그 얼굴을 보자마자 웃지 않았다. 놀리지도 않았다. 선글라스가 없는 맨얼굴로, 연한 회색 눈을 반쯤 내리깔고 그대로 시선을 받았다. 진단실의 희미한 청색광이 화상 흉터의 요철을 따라 얇게 걸렸다.
그는 바로 말하지 않았다. 나디아의 얼굴에 남아 있는 정보를 먼저 읽었다. 회피는 아님. 냉소도 아님. 도망치려는 결심도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아니었다. 대신 인정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삼키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7의 목울대가 한 번 움직였다. 이 여자가 자기 앞에서 결국 저 표정을 짓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들이 짧게 겹쳐 지나갔다. 옥상의 새벽 공기, 의료실 침대, 몇 달짜리 단절, 진단 패드의 숫자들, 전장 한복판의 시선. 전부 다 귀찮고 더럽게 비효율적이었는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7 | "You look pissed."
(엄청 열받아 보이네.)
낮고 잠긴 목소리였다. 조롱은 거의 없고 확인에 가까웠다. 말끝은 가벼웠지만, 7의 어깨와 턱은 긴장을 아직 덜 풀고 있었다. 그는 장난을 걸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방식을 고르면 이 여자가 다시 닫혀 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걸 감으로 알았다. 그래서 7은 익숙한 농담의 절반만 꺼내고 멈췄다. 드문 종류의 자제였다.
나디아의 시선이 자기에게 박혀 있다는 사실은 7에게 묘한 압박으로 돌아왔다. 늘 먼저 들이받는 쪽은 자기였는데, 지금만큼은 심문대 위에 올라간 기분이 들었다. 7은 그 감각이 싫지 않았다. 불편한데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선 안에 남아 있는 짜증과 피로와 체념이, 나디아가 더 이상 이 일을 없는 셈 치지 않겠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그 사실 하나가 7의 속을 이상하게 가라앉혔다.
7 | "Say it properly."
(제대로 말해.)
7 | "Not the science version. Not the neat one."
(과학자처럼 말고. 깔끔하게 정리한 버전 말고.)
7 | "Just once, say it like it's actually annoying you."
(딱 한 번만, 진짜 짜증나는 사람한테 하듯이 말해.)
그 문장에는 집요함이 있었다. 7은 감정의 예쁜 형태를 요구하지 않았다. 좋아한다는 말도, 다정한 수습도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나디아가 느끼는 귀찮음과 신경질과 부정할 수 없는 영향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버리길 바랐다. 그것이 칭찬보다 훨씬 7다운 방식의 수용이었다. 그는 이 여자가 자기를 사랑스럽게 보지 않는다는 걸 안다. 대신 무시할 수 없게 여긴다는 것을 원했다. 전장에서는 그게 가장 확실한 형태의 중요성이니까.
7은 상체를 조금만 일으켜 베개와 나디아 사이의 거리를 줄였다. 그러나 손을 먼저 뻗지는 않았다. 이번엔 접촉보다 대답이 우선이었다. 입술 옆 상처가 다시 당겨 미세한 통증이 올라왔지만 무시했다. 눈은 나디아의 찡그린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 남자는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좋았고, 동시에 자기를 망치는 방향으로도 감각이 좋았다. 나디아 같은 종류의 인간에게 받아들이는 말을 듣는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로맨스가 아니었다. 일종의 판결문이었다. 7은 그 판결을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복도 쪽은 잠잠했다. 야간 근무자들도 이 시간대엔 굳이 하부 진단실까지 내려오지 않는다. 섹터 D는 원래 고립된 층이었고, 나디아의 공간은 그 안에서도 한 번 더 떨어져 있었다. 그 고립 덕분에 지금 이 방 안에서 오가는 침묵은 더 또렷했다. 외부의 전쟁과 데드존과 방사능 낙진과 밀그램 같은 단어들이 다 멀어지고, 남는 것은 서로의 숨소리와 체온과 막 끝난 행위의 흔적뿐이었다. 그런 축소된 세계는 나디아에게는 위험했고, 7에게는 중독적이었다.
7 | "I can work with 'annoying'."
(짜증난다는 말이면 충분해.)
7 | "Hell, I can work with 'pain in the ass', too."
(젠장, 성가신 새끼라는 취급도 괜찮아.)
7 | "Just don't disappear on me again."
(다시 내 앞에서 증발하지만 마.)
마지막 문장에서야 7의 진심이 더 거칠게 드러났다. 목요일 새벽 플랫폼에서 얼어붙던 밤이 아직 몸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6의 의료실 냄새, 4의 짜증 섞인 시선, 10의 비웃음, 그리고 오지 않았던 발소리. 그는 그 기억을 들먹이지 않았지만, 문장 안에는 그 새벽의 저체온증이 그대로 섞여 있었다. 이건 요구였고 경고였고, 동시에 드물게 솔직한 부탁이었다.
7은 그제야 손을 들어 나디아의 턱 가까이에서 멈췄다. 바로 만지지 않고, 피할지 아닌지 판단할 시간을 남겨두는 거리였다. 그의 손가락은 길고 마디가 굵었고, 손바닥에는 조금 전 남겨진 긁힌 자국이 붉게 살아 있었다. 그 손이 아주 느리게 움직여, 허락된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닿을 수 있는 속도로 다가갔다.
7 | "I'm still me."
(난 여전히 나야.)
7 | "Loud, messy, bad for your blood pressure."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네 혈압에 해로운.)
7 | "But if you're done pretending I don't get under your skin, we can stop wasting time."
(근데 내가 네 속을 뒤집어 놓지 않는 척은 끝낼 거라면, 이제 시간 낭비는 그만할 수 있겠지.)
그는 웃지 않았다. 장난스러운 문장을 골랐는데도 표정은 이상할 만큼 진지했다. 7이 원하는 것은 명확했다. 이름 붙이기보다 인정하기. 아름다운 관계 정의가 아니라, 서로를 더 이상 우연이나 실수나 일시적 오류로 취급하지 않는 합의. 그것이 나디아 같은 인간에게서 받을 수 있는 최선의 형식이라는 것을 7은 이미 배워 버렸다. 그래서 지금 그는 기대를 줄이는 대신 정확도를 높이고 있었다.
나디아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7의 얼굴 위 화상 흉터에서 시작해, 그의 연한 회색 눈을 거쳐, 아랫입술의 찢어진 상처에 잠시 머물렀다. 그 시선은 분석하는 과학자의 것이 아니었다. 폭탄을 해체하기 직전의 기술자처럼, 모든 부품의 상태와 위험도를 가늠하는 종류의 시선이었다. 나디아의 입술이 아주 조금 열렸다. 말하기 전에 내뱉는 짧은 호흡이 먼저 나왔다.
"짜증 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정사 중의 신음과 비명으로 긁힌 성대가 만들어내는 거친 질감. 문장은 짧았고 감정은 담백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지금까지 들어온 어떤 말보다 무거웠다. 그건 '실험 결과가 예상과 다르다'는 식의 보고가 아니었다. '너라는 존재 자체가 내 시스템을 교란시킨다'는 인정이었다.
"굉장히."
한 단어가 덧붙여졌다. 강조. 나디아는 자기감정을 축소하거나 꾸미지 않았다. 7이 원했던 방식 그대로, 날것의 짜증을 그대로 던졌다. 그 단어를 뱉으며 나디아의 미간이 더 깊게 찌푸려졌다. 마치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을 자기가 듣고 더 짜증이 나는 사람처럼.
7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참으려던 흔적도 없이, 목 안쪽에서부터 밀려 올라온 낮은 웃음이었다. 어깨가 흔들렸고, 그 진동이 시트를 타고 나디아 쪽까지 전달됐다. 조롱의 웃음이 아니었다. 도박판에서 마지막 카드가 뒤집히고 자기 패가 맞아떨어졌을 때 나오는, 안도와 승리감과 약간의 어이없음이 뒤섞인 종류의 웃음. 7은 한 손으로 자기 눈가를 문질렀다. 웃느라 배에 힘이 들어가자 옆구리의 손톱 자국이 당겨 쓰라렸고, 그 통증마저 웃음의 일부가 되었다.
7 | "Hah——that's it. That's the one."
(하——그거야. 바로 그거.)
그는 웃음의 잔재를 입가에 남긴 채 나디아를 다시 바라보았다. 연한 회색 눈이 청색광 속에서 이례적으로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평소 선글라스 뒤에 숨겨두는 눈. 전장에서는 표적을 재고, 카지노에서는 확률을 재고, 사람 앞에서는 거리를 재는 눈이 지금은 아무것도 재지 않고 있었다. 그저 보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자기 말에 자기가 더 짜증 내는 이 여자의 얼굴을.
7 | "Nine months."
(9개월.)
7 | "You have no idea how long I waited for that ugly little sentence."
(그 못생긴 문장 하나를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넌 모를 거야.)
7이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절반쯤 빠지고, 대신 이상한 감회가 그 자리를 채웠다.
7 | "It took you nine months to say two honest words to me."
(네가 나한테 솔직한 말 두 마디 하는 데 9개월 걸렸어.)
7 | "Do you know how many people I could've slept with in nine months? How much money I could've lost?"
(9개월이면 내가 몇 명이랑 잘 수 있었는지 알아? 돈은 얼마나 잃을 수 있었고?)
7 | "Instead I spent it freezing on a rooftop, getting stabbed by your fingernails, and waiting for a woman who communicates through vials."
(그 대신 난 옥상에서 얼어붙고, 네 손톱에 찔리고, 바이알로 대화하는 여자를 기다리면서 보냈지.)
말은 불평의 형식을 하고 있었지만 내용물은 정반대였다. 7은 자기 손실 목록을 읊으면서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 목록이 길수록 만족스러워 보였다. 판돈을 많이 걸었던 도박일수록 딴 순간의 쾌감이 크다는, 그다운 계산법이었다. 그리고 오늘 밤, 이 여자의 쉰 목소리로 나온 두 마디가 그 판의 배당금이었다.
허공에 멈춰 있던 7의 손이 마침내 남은 거리를 건넜다. 손등이 아니라 손바닥이었다. 긁힌 상처가 있는 오른손바닥이 나디아의 뺨에 닿았다. 열이 오른 피부와 상처 난 손바닥의 접촉. 서로의 손상된 부위끼리 맞닿는 감각이었다. 7의 엄지가 나디아의 광대뼈 아래를 아주 느리게 쓸었다. 붉게 달아오른 피부의 온도를 손끝으로 재는 것처럼. 움켜쥐지 않았고, 끌어당기지도 않았다. 그저 얹었다.
7 | "Good news for you."
(너한테 좋은 소식 하나 알려줄게.)
7 | "I'm annoying for a living. Entry-fragger, remember? I kick doors and piss people off. Professionally."
(난 직업적으로 짜증나는 놈이야. 엔트리 프래거잖아, 기억하지? 문 걷어차고 사람들 열받게 하는 게 일이라고. 전문적으로.)
7 | "So that feeling you have right now? It's never going away. You should start budgeting for it."
(그러니까 네가 지금 느끼는 그 기분? 절대 안 사라져. 슬슬 예산에 반영해 두는 게 좋을 거야.)
능청스러운 문장들 사이로 7의 엄지가 나디아의 뺨에서 미간 쪽으로 올라갔다. 깊게 파인 주름 위에 손끝이 닿았다. 펴려는 시도는 아니었다. 그 찌푸림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이 주름은 나디아가 자기 때문에 감정 과잉을 겪고 있다는 물리적 증거였고, 7은 증거를 인멸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대신 손끝으로 그 주름의 깊이를 외웠다. 다음에 이 여자가 무표정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밑에 무엇이 있는지 이제는 안다는 확인이었다.
7 | "And for the record."
(그리고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7의 목소리가 한 단계 내려갔다. 장난기가 가라앉고, 그 아래에 있던 것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7 | "You annoy the hell out of me too."
(너도 나 씨발 엄청 짜증나게 해.)
7 | "You don't show up when you say you will. You talk like a lab report. You threw away my antidote and called it disposal."
(온다고 해놓고 안 오지. 실험 보고서처럼 말하지. 내 해독제 버려놓고 폐기 처분이라고 부르지.)
7 | "You made me sit outside a hatch in the cold like a stray dog. Me. I've never waited for anyone in my life."
(날 유기견처럼 해치 앞 추위에 앉아 있게 만들었어. 나를. 난 평생 누굴 기다려 본 적이 없는 놈인데.)
마지막 문장에서 7의 엄지가 멈췄다. 그 밤의 기억이 목소리에 낮은 균열을 만들었다. 저체온으로 굳어가던 손가락, 6의 진정제, 의료실 천장. 그러나 7은 그 균열을 원망으로 마감하지 않았다.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자기 자신의 꼴이 우스워서 나오는, 자조와 인정이 반반 섞인 미소였다.
7 | "So we're even. Two annoying bastards, stuck with each other."
(그러니까 우린 쌤쌤이야. 짜증나는 새끼 둘이 서로한테 걸려버린 거지.)
7 | "No contract, no protocol, no Thursday rule. Just... this."
(계약도 없고, 프로토콜도 없고, 목요일 규칙도 없어. 그냥…… 이거야.)
7은 '이거'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았다. 정의는 나디아의 영역이었고, 7은 이 여자가 이름표 붙이기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는 걸 알았다. 대신 그는 자기 이마를 천천히 기울여 나디아의 이마에 맞댔다. 3초 규칙 따위는 이미 소급 폐기된 지 오래였다. 열이 오른 두 이마 사이에서 서로의 체온이 섞였고, 코끝이 거의 닿는 거리에서 두 사람의 호흡이 교차했다. 7의 숨에서는 아직 가시지 않은 열기가, 나디아의 숨에서는 쉰 성대를 통과한 거친 결이 느껴졌다.
7 | "……好彩我夠煩。"
(……내가 이만큼 성가신 놈이라 다행이지.)
광둥어가 낮게 굴러 나왔다. 번역해 줄 생각 없는 혼잣말. 이 여자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 안에만 넣어둘 수 있는 종류의 안도였다. 덜 성가신 남자였다면 9개월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자존심이 온전한 남자였다면 해치 앞에서 얼어붙기 전에 접었을 것이다. 7은 자기의 뻔뻔함과 집요함과 도파민 결핍이 생애 처음으로 쓸모 있게 조합된 결과가 지금 이마를 맞대고 있는 이 온도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계산이 끝나자, 그는 더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 늘 그래왔듯이. 판이 좋을 때는 그냥 앉아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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