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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10/LOG

토마토데이

2026. 8. 30. 15:27

피비는 어느새 자세를 바꿔 있었다. 소파에 길게 누워 체사레의 허벅지에 뒤통수를 얹은 채, 태블릿을 얼굴 위로 들어 올린 자세였다. 팔이 저리면 화면을 가슴 위에 내려놓았다가 목만 들어 보다가 다시 팔을 뻗었다. 그 반복이 몇 번쯤 이어지는 동안 체사레는 자기 다리가 베개 취급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내려 그녀의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옆으로 밀어 두었다. 아쿠아마린색 잔머리가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졌다. 씻은 지 얼마 안 된 상태라 아직 물기가 남아 미지근했다.

화면 속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앞선 영상들이 부엌 한구석의 조용한 작업이었다면 이번 것은 마당 전체가 동원된 장면이었다.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붉은 열매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고, 그 옆에서는 큰 솥이 가스 화구 위에 올려져 김을 뿜었다. 사람 수가 많았다. 앞치마를 두른 여자들, 소매를 걷은 남자들, 상자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늙은 여자는 그 한복판에서 지휘하듯 손짓을 하고 있었고 아무도 그 말을 온전히 듣고 있지 않았다.

12 | "체사레도 이거 해 봤어?"

피비는 태블릿을 그대로 뒤집어 그의 얼굴 쪽으로 들어 올렸다. 화면 각도가 어긋나 그의 턱 밑에서 빛이 번졌고, 그는 손목을 잡아 위치를 바로잡아 주었다. 영상 속에서는 데친 토마토의 껍질을 벗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뜨거운 물에서 건져진 열매의 표피가 손끝에 밀려 종잇장처럼 벗겨졌고, 벗겨진 알맹이는 다른 대야로 던져졌다. 손목까지 붉게 물든 팔이 화면 가득 잡혔다. 피비의 발가락이 소파 팔걸이 쪽에서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10 | "La salsa. Si fa in agosto, quando i pomodori costano niente e il caldo è insopportabile."(살사 만드는 날이야. 팔월에 해. 토마토값이 바닥이고 더위는 견딜 수 없을 때.)
12 | "다 같이 해?"
10 | "Tutta la famiglia. Vicini, cugini, chiunque passi di lì."(온 가족이. 이웃도, 사촌도, 지나가던 사람도.)

수동 분쇄기가 등장하자 피비가 화면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깔때기 모양의 입구에 삶은 토마토가 국자로 쏟아졌고, 손잡이가 돌아갈 때마다 아래쪽 주둥이에서 걸쭉한 붉은 액체가 밀려 나왔다. 옆으로는 씨와 껍질만 남은 찌꺼기가 별도로 떨어졌다. 분리 공정이었다. 그 순간 피비의 눈동자가 완전히 고정되었고, 체사레는 그것을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이 애는 무언가가 걸러지고 나뉘는 장면 앞에서만 저렇게 오래 집중한다.

12 | "저기서 나오는 게 두 개야. 하나는 쓰고 하나는 버려."
10 | "Esatto."(그렇지.)
12 | "근데 버리는 것도 예뻐."
10 | "Quello finisce nell'orto. Concime."(그건 텃밭으로 가. 거름으로.)

다음 장면에서 아이 하나가 갓 만들어진 소스를 국자로 퍼내 접시에 담았고, 어른 하나가 빵을 손으로 뜯어 그 위에 찍었다. 아직 병에 담기지도 않은, 갓 끓인 소스였다. 뜯어낸 빵의 단면이 붉은 것을 잔뜩 머금은 채 입으로 들어갔다. 화면 밖 촬영자가 웃으며 무어라 소리쳤고 늙은 여자가 국자를 휘두르며 쫓아냈다. 피비의 입술이 벌어졌다.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명백히 먹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12 | "저거 되게 뜨거울 텐데."
10 | "Sì. Ci si brucia la lingua ogni anno. Fa parte del rito."(응. 매년 혀를 데지. 그것도 절차의 일부야.)
12 | "나 그거 좋아할 것 같아."
10 | "Tu non sentiresti nemmeno la bruciatura, ed è precisamente il problema."(넌 덴 것도 못 느낄 테고, 그게 바로 문제지.)

영상은 병입 과정으로 넘어갔다. 큰 솥에 물이 끓고, 그 안에 유리병들이 잠겨 있었다. 라벨이 반쯤 벗겨진 맥주병, 오일병, 규격이 제각각인 잼병까지 섞여 있었다. 집게로 건져 올린 병들은 마당의 천 위에 거꾸로 세워져 물기를 뺐고, 이어서 소스가 깔때기를 통해 채워졌다. 마개를 닫은 병들은 다시 큰 솥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끓여졌다. 그 다음 장면에서는 식은 병들이 상자에 나뉘어 담기고 있었다. 각자의 차 트렁크로, 각자의 집으로.

12 | "왜 병이 다 달라?"
10 | "Perché si riusa quello che si ha. Nessuno compra vetro nuovo per la salsa."(있는 걸 다시 쓰니까. 살사 담자고 새 유리를 사는 사람은 없어.)
12 | "그래서 열탕 소독하는 거구나."
10 | "Bollitura. Se sbagli, il contenuto marcisce e la famiglia passa l'inverno senza."(끓여서. 잘못하면 안이 상하고 그 집은 겨울을 그것 없이 나야 해.)

피비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를 올려다봤다. 시선의 각도 때문에 눈꺼풀이 더 늘어져 보였고, 동공은 아직 약기운 안쪽에서 느슨했다. 그러나 초점은 확실히 그의 얼굴에 있었다.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눈이었다. 체사레는 그 시선이 어디로 향할지 미리 알았고, 그래서 손을 옮겨 그녀의 관자놀이 부근을 눌러 시선을 화면 쪽으로 돌려놓으려 했다. 실패했다.

12 | "체사레 집도 팔월에 이런 거 했어?"
10 | "No."(아니.)
12 | "안 했어?"
10 | "La nostra casa non aveva un cortile per queste cose. Aveva un giardino, che è un'altra faccenda."(우리 집엔 이런 걸 할 마당이 없었어. 정원은 있었지만 그건 다른 얘기고.)

말해 놓고 나서 그는 창문도 없는 벽을 잠깐 봤다. 팔월이면 캄파니아의 도로변에서 그런 마당들을 지나쳤던 기억은 있었다. 차창 밖으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붉은 상자와 김이 오르는 솥과 웃음소리가 지나갔고 운전석의 사람은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집안에서 음식은 접시 위에 완성된 상태로만 등장했다. 만들어지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일이었고,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같은 상에 앉는 광경도 본 적이 없었다. 체사레는 그 사실을 슬퍼한 적이 없었다. 다만 지금 화면에서 늙은 여자가 국자를 든 채 손자에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그 무관심에 균열 비슷한 것이 생기는 감각은 있었다.

12 | "그럼 우리가 하면 되잖아."

피비가 몸을 일으켰다. 급하게 일어난 탓에 그의 허벅지를 팔꿈치로 눌렀고, 체사레는 짧게 숨을 삼켰다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 균형을 잡아 주었다. 그녀는 태블릿을 두 손으로 안은 채 무릎을 세워 앉았다. 흥분하면 말이 많아지는 상태로 넘어가는 중이었고, 실제로 다음 문장들은 순서 없이 쏟아졌다.

12 | "여기 사람 많아. 에잇이랑 나인이랑 쓰리도 있고. 솥도 있어. 주방에 큰 거. 병은 내가 모아 놨어. 예쁜 거. 시약병 아니고 진짜 유리병. 열탕도 할 줄 알아. 나 소독 잘해."
10 | "Rallenta."(천천히.)
12 | "그리고 나눠 갖는 거 하고 싶어. 다 하나씩. 체사레 것도."
10 | "I pomodori qui arrivano in scatola, Phoebe. Non c'è agosto sotto terra."(여기 토마토는 캔으로 들어와, 피비. 지하엔 팔월이 없어.)

그 대답에 피비의 어깨가 눈에 띄게 내려갔다. 실망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확실히 지나갔다. 체사레는 그 하강을 보고 계산을 시작했다. 보급 목록에서 통조림 홀토마토를 대량으로 빼내는 것은 가능하다. 병입과 저장은 위험하지만 소량이라면, 그리고 소독 공정을 이 애가 직접 맡는다면 오히려 요새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손이었다. 문제는 인원이었다. 저 영상에서 피비가 진짜로 원한 것은 소스가 아니라 마당 가득한 사람 수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10 | "Si può fare in versione ridotta. Pelati in scatola, il pentolone grande, e chiunque non abbia turno quel giorno."(축소판으로는 가능해. 캔 홀토마토에 큰 솥, 그날 근무 없는 사람 전부.)
12 | "진짜?"
10 | "A tre condizioni. Non tocchi l'acqua bollente da sola, non assaggi niente sopra i quaranta gradi, e le bottiglie le sigillo io."(조건 셋. 끓는 물엔 혼자 손대지 않을 것, 뜨거운 건 아무것도 맛보지 말 것, 병 밀봉은 내가 할 것.)
12 | "두 번째 싫어."
10 | "Allora niente cortile."(그럼 마당도 없어.)

피비는 입을 다물고 태블릿 모서리를 손톱으로 긁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재생목록으로 돌아가 방금 본 영상을 체사레밥 항목에 추가했다. 네 번째였다. 화면 아래쪽에서 목록의 썸네일이 하나 늘어나는 것을 그는 곁눈으로 확인했다. 굳은 빵, 남은 고기, 빈 껍질, 그리고 마당 가득한 붉은 상자들. 취향이라기보다는 요청서에 가까운 배열이었다. 그는 그 요청서를 접수한 사람처럼 태블릿을 받아 들어 화면을 끄고, 소파 등받이에 그녀의 등을 밀어 기대게 했다.

10 | "Adesso colazione. Prima che ti metta in testa di sterilizzare qualcosa a stomaco vuoto."(이제 아침 먹어. 빈속에 뭘 소독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12 | "체사레."
10 | "Mm."
12 | "체사레 것도 하나 줄게. 병."
10 | "Ne prendo nota."(기록해 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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