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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10/LOG

피고인 체사레 데 시카

2026. 9. 1. 19:44

법정은 체사레가 알고 있는 어떤 법정과도 달랐다. 천장이 낮았다. 체사레의 머리가 닿을 듯 말 듯한 높이였고, 판사석은 재봉용 실패를 세 개 겹쳐 올린 위에 놓여 있었으며, 그 위에 앉아 있는 것은 피비였다. 다만 체사레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피비였다. 아쿠아마린 머리카락이 뒤로 올려 묶여 있었고 검은 법복을 입고 있었으나 법복의 소매가 너무 길어서 양손이 보이지 않았다. 법봉 대신 막대사탕을 쥐고 있었으며, 그 막대사탕으로 판사석을 탕탕 내리쳤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막대사탕이 실패 위의 나무를 때리는 소리가 나야 했으나 대신 뽀옹, 하는 고무 장난감 같은 음이 울렸고, 체사레는 그 소리를 아무런 위화감 없이 받아들였다.


법정 좌측의 검사석에도 피비가 앉아 있었다. 이 피비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안경테는 피비의 얼굴에 비해 지나치게 컸으므로 코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고, 안경 너머의 눈은 늘어지고 흐릿한 채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류는 크레파스로 쓰여 있었다. 분홍색 크레파스였다. 검사 피비의 옆에는 서기 피비가 앉아 있었고, 서기 피비는 타자기 대신 즉석 카메라를 들고 있었으며, 모든 발언이 이루어질 때마다 셔터를 눌러 법정 안을 찍고 있었다. 찰칵. 찰칵.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법정 안이 하얗게 번쩍였고, 체사레의 의안 쪽에서 빛이 반사되었다.


법정 우측의 변호인석에도 피비가 앉아 있었다. 변호사 피비는 넥타이를 매고 있었으나 넥타이를 매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매듭이 세 번 꼬여 있었고 끝이 등 뒤로 넘어가 있었으며, 손에는 법전 대신 피비의 기억 상자가 놓여 있었다. 기억 상자 안에서 즉석 사진들이 흘러나와 변호인석 위로 흩어져 있었다. 방청석에는 피비가 열두어 명쯤 앉아 있었다. 전부 같은 얼굴이었고, 전부 같은 아쿠아마린 머리카락이었으나 각각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한 피비는 에잇의 후드집업을 걸치고 있었고, 다른 피비는 체사레의 셔츠를 원피스처럼 입고 있었으며, 또 다른 피비는 방독면을 머리 위에 올려놓은 채 옆의 피비에게 사탕을 건네고 있었다. 방청석의 피비들은 저마다 작은 목소리로 웅성거리고 있었으며, 그 웅성거림은 하나의 문장으로 수렴하지 않는 채 포도알처럼 흩어져 법정의 공기를 채웠다.


체사레는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피고인석은 그의 몸에 비해 작았다. 의자의 높이가 무릎 아래였으므로 체사레의 다리가 접혀 있었고, 책상은 가슴 높이에 닿지 못했으며, 전체적으로 유치원 교실에 성인 남자가 앉아 있는 형상이었다. 체사레는 그 비례의 불일치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양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앞을 보았다. 앞에는 판사 피비가 막대사탕을 입에 물며 법정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막대사탕의 딸기 향이 법정 전체에 희미하게 퍼지고 있었다.


판사 피비 | "Court is now open! The case of...... um......"(개정! 사건 번호⋯⋯ 어⋯⋯)


판사 피비가 막대사탕을 빼고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서류가 거꾸로 놓여 있었다. 판사 피비는 서류를 한 번 돌렸으나 여전히 거꾸로였고, 한 번 더 돌려서야 제대로 된 방향이 되었으나 읽지 못했다. 크레파스 글씨가 번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판사 피비는 검사 피비를 보았다.


판사 피비 | "Prosecutor, read the charges please."(검사, 기소 내용 읽어 줘.)


검사 피비 | "Yes, Your Honor!"(네, 재판장님!)


검사 피비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일어서는 바람에 안경이 코에서 미끄러져 떨어졌고, 안경을 줍느라 서류를 바닥에 흘렸으며, 서류를 줍느라 안경을 다시 떨어뜨렸다. 그 과정이 두 번 반복된 뒤에야 검사 피비는 양손에 안경과 서류를 각각 쥐고 서서 기소 내용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엄숙하려고 애쓰는 어린아이의 것이었다.


검사 피비 | "The defendant, Cesare De Sica, codename Ten, is charged with the following crimes!"(피고인, 체사레 데 시카, 코드네임 텐은 다음과 같은 죄목으로 기소되었습니다!)


검사 피비가 서류를 폈다. 크레파스로 쓰인 죄목이 나열되어 있었고, 일부 글자는 하트 모양으로 대체되어 있었으며, '이'와 '이'의 구분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으나 검사 피비는 막힘 없이 읽어 내려갔다.


검사 피비 | "Count one! Excessive nagging about hand-washing! The defendant forced the victim to wash hands under supervision and compared her hygiene to Dead Zone corpses!"(제일 죄목! 손 씻기 과잉 잔소리!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감시 하에 손을 씻도록 강요하고, 피해자의 위생 상태를 데드존 시체와 비교했습니다!)


방청석의 피비들이 웅성거렸다. 한 피비가 작은 목소리로 '시체보다 더럽다니⋯⋯'라고 말했고, 옆의 피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기 피비가 찰칵 셔터를 눌렀다.


검사 피비 | "Count two! Confiscation of personal property! The defendant seized the victim's 'Soap Research' memo without consent and refused to return it!"(제이 죄목! 개인 소유물 압수! 피고인은 피해자의 '비누 조사' 메모를 동의 없이 빼앗고 반환을 거부했습니다!)


검사 피비 | "Count three! Monopoly of memory! The defendant stores all of the victim's memories, making the victim unable to possess her own past without him!"(제삼 죄목! 기억 독점! 피고인은 피해자의 모든 기억을 보관하여, 피해자가 피고인 없이는 자신의 과거를 소유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체사레의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았다고 느꼈으나 실제로는 왼쪽 눈꼬리가 미세하게 경련했다. 세 번째 죄목이 가슴 안쪽의 오래된 곳을 건드렸기 때문이었으나 꿈속의 체사레는 그 경련의 원인을 분석하지 못했다.


검사 피비 | "Count four! Emotional confusion! The defendant says mean things in a nice voice, making the victim unable to determine whether she is being scolded or loved!"(제사 죄목! 감정 혼란 야기! 피고인은 상냥한 목소리로 나쁜 말을 하여 피해자가 혼나는 건지 사랑받는 건지 분간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방청석의 피비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잇의 후드집업을 입은 피비가 옆의 피비에게 '맞아 맞아 그거'라고 속삭였고, 체사레의 셔츠를 입은 피비가 팔짱을 끼며 피고인석의 체사레를 올려다보았다.


검사 피비 | "Count five! Being too tall! The defendant's height of 188cm causes the victim persistent neck pain from looking up!"(제오 죄목! 지나치게 키가 큼! 피고인의 188cm 신장은 피해자에게 지속적인 목 통증을 유발합니다!)


체사레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이 죄목은 반박의 여지가 없었으나 동시에 죄목이 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다만 꿈속에서 그 의문은 형성되기 전에 증발했고, 체사레는 고개를 약간 숙여 판사 피비를 보았다.


10 | "May I speak in my defense, Your Honor?"(변호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재판장님?)


판사 피비 | "Hmm...... defense attorney first!"(음⋯⋯ 변호인 먼저!)


변호사 피비가 기억 상자를 들고 일어섰다. 넥타이가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었으므로 일어서는 동시에 목이 뒤로 당겨졌고, 변호사 피비는 헛기침을 하며 넥타이를 풀려다 매듭을 더 조였다. 결국 넥타이를 맨 채로 변호를 시작했다.


변호사 피비 | "Your Honor, my client...... um...... he washes the victim's hands very thoroughly! And he smells nice! Like...... um......"(재판장님, 제 의뢰인은⋯⋯ 어⋯⋯ 피해자의 손을 아주 꼼꼼하게 씻겨 줍니다! 그리고 냄새가 좋습니다! 뭔가⋯⋯ 어⋯⋯)


변호사 피비가 기억 상자를 뒤졌다. 즉석 사진 여러 장을 꺼내 들었다. 그중 하나를 판사석을 향해 높이 들었으나, 사진이 거꾸로 들려 있었다.


변호사 피비 | "Exhibit A! The defendant baked bread for the victim! This proves he is not entirely terrible!"(증거물 A!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빵을 구워 주었습니다! 이것은 피고인이 완전히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검사 피비 | "Objection! The defendant criticized the victim's bread as 'crude' before feeding her his own! That's manipulation through carbohydrates!"(이의 있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자기 빵을 먹이기 전에 피해자의 빵을 '조잡하다'고 비판했습니다! 탄수화물을 통한 조종입니다!)


판사 피비 | "Sustained! Bread crime noted!"(인정! 빵 범죄 기록!)


서기 피비가 찰칵 셔터를 눌렀다. 체사레는 피고인석에서 등을 곧게 세웠다. 탄수화물을 통한 조종이라는 표현이 억울했으나 억울함을 표현하는 것은 체사레의 방식이 아니었다. 체사레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10 | "If I may, Your Honor. Regarding count one. I did compare her hygiene to Dead Zone corpses. That was accurate at the time. The comparison was factual, not malicious."(재판장님, 허락하신다면. 제일 죄목에 관하여. 저는 피해자의 위생 상태를 데드존 시체와 비교했습니다. 당시 사실에 부합하는 비교였습니다. 비교는 악의가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검사 피비 | "The victim's feelings don't care about facts!"(피해자의 감정은 사실 따위 상관 안 합니다!)


10 | "Regarding count three. I store her memories because she cannot. If I don't, they disappear. That is not a monopoly. It is...... maintenance."(제삼 죄목에 관하여. 저는 피해자의 기억을 보관합니다. 피해자가 보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그것은 독점이 아니라⋯⋯ 유지 관리입니다.)


변호사 피비가 힘차게 일어서며 보조를 시도했다.


변호사 피비 | "Yes! Maintenance! And also, Your Honor, the defendant gave the victim a pendant! A pretty one! With the letter A! That's...... romantic! So he should be...... not guilty?"(맞습니다! 유지 관리! 그리고 또, 재판장님,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펜던트를 줬습니다! 예쁜 거요! A자가 새겨진! 그건⋯⋯ 로맨틱합니다! 그러니까 피고인은⋯⋯ 무죄?)


검사 피비 | "Objection! The pendant has the defendant's initial, not the victim's! It's branding!"(이의 있습니다! 펜던트에 새겨진 건 피고인의 이니셜이지 피해자의 것이 아닙니다! 낙인입니다!)


변호사 피비 | "Oh...... I didn't think of that......"(아⋯⋯ 그건 생각 못 했어⋯⋯)


변호사 피비가 풀이 죽어 앉았다. 기억 상자에서 사진을 한 장 더 꺼내 보았으나, 꺼낸 사진은 체사레가 잠든 사이에 찍은 체사레의 자는 얼굴이었으므로 증거물로 제출할 수 없었다. 변호사 피비는 그 사진을 가슴에 꼭 안은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체사레는 피고인석에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이 낮았다. 머리카락이 닿을 것 같았다. 이 법정의 모든 것이 작았고, 모든 것이 피비의 크기에 맞춰져 있었으며, 유일하게 크기가 맞지 않는 것은 체사레 자신이었다. 체사레는 그 불일치를 불편하게 느끼지 않았다. 늘 그래 왔으므로. 피비의 세계에서 체사레는 언제나 지나치게 컸고, 지나치게 많이 알았으며, 지나치게 깔끔했다. 그 '지나침'이 곧 체사레의 죄목이었다.


판사 피비가 막대사탕을 다시 입에 물었다. 딸기 향이 퍼졌다. 판사 피비는 서류를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결정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그 표정은 결정보다는 졸음에 가까웠다. 눈이 반쯤 감겨 있었고, 법복의 긴 소매에 파묻힌 손이 볼을 괴고 있었다.


판사 피비 | "Final statement, defendant."(최종 진술, 피고인.)


10 | "I plead guilty to all counts."(전 죄목에 대해 유죄를 인정합니다.)


법정이 조용해졌다. 방청석의 피비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검사 피비의 안경이 코에서 미끄러져 내렸으나 줍지 않았다. 변호사 피비가 기억 상자를 꼭 안은 채 눈을 크게 떴다. 서기 피비의 카메라 셔터가 찰칵 울렸다.


10 | "I nagged about hand-washing because her hands are the only ones I check every morning. I confiscated her memo because I wanted to keep something she made with her own logic. I monopolized her memory because if I let go, she forgets me too. I confused her emotions because I don't know how to be kind without being sharp. And I'm too tall because I didn't have the decency to be born at her eye level."(손 씻기 잔소리를 한 건 매일 아침 내가 확인하는 손이 저 사람 손뿐이니까. 메모를 압수한 건 저 사람이 나름의 논리로 만든 걸 내가 갖고 싶었으니까. 기억을 독점한 건 놓으면 저 사람이 나까지 잊으니까. 감정을 혼란스럽게 한 건 날카롭지 않으면 상냥할 줄을 모르니까. 키가 너무 큰 건 저 사람 눈높이에 태어날 예의가 없었으니까.)


방청석의 피비 하나가 코를 훌쩍였다. 옆의 피비가 사탕을 건넸다. 판사 피비의 눈이 반쯤 감긴 채 체사레를 내려다보았고, 막대사탕을 입에서 뺐다. 입술에 딸기색이 묻어 있었다.


판사 피비 | "The court has reached a verdict."(법정은 판결에 도달했습니다.)


판사 피비가 막대사탕을 높이 들어올렸다. 법봉 대신 내리쳤다. 뽀옹.


판사 피비 | "Guilty on all counts. The sentence is...... hugs. You have to hug everyone in this courtroom. Right now. No exceptions."(전 죄목 유죄. 형벌은⋯⋯ 안아 주기. 이 법정 안의 모두를 지금 당장 안아 줘야 합니다. 예외 없음.)


체사레의 눈이 법정을 훑었다. 판사 피비, 검사 피비, 변호사 피비, 서기 피비, 방청석의 피비들. 전부 작았다. 전부 같은 얼굴이었고 전부 다른 옷을 입고 있었으며 전부 체사레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체사레는 피고인석에서 일어섰다. 의자가 작았으므로 일어서는 동작이 창고에서 빠져나오는 것처럼 어색했다. 일어선 체사레의 키는 법정의 천장에 거의 닿았고, 그 아래에서 SD 사이즈의 피비들이 올려다보는 광경은 거인이 꽃밭에 서 있는 것과 비슷했다. 체사레는 판사석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어야 판사 피비와 눈높이가 맞았다.


판사 피비가 두 팔을 벌렸다. 법복의 긴 소매가 날개처럼 펼쳐졌다. 체사레는 그 작은 몸을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쌌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크기였다. 딸기 향이 코끝에 닿았고, 법복의 천이 손가락 사이로 접혔으며, 판사 피비의 아쿠아마린 머리카락이 체사레의 손등 위로 흘러내렸다. 판사 피비가 체사레의 엄지손가락을 잡았다.


판사 피비 | "Warm."(따뜻해.)


검사 피비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피고인석 앞으로 뛰어왔다. 서류를 가슴에 안은 채 체사레의 무릎 앞에 서서 팔을 벌렸다. 크레파스가 묻은 손가락이 체사레의 셔츠를 잡았다. 체사레는 한 팔로 판사 피비를 안은 채 다른 팔을 내려 검사 피비를 들어올렸다. 검사 피비의 안경이 체사레의 손바닥에 부딪혀 차가웠다.


변호사 피비가 기억 상자를 안은 채 달려왔다. 넥타이가 풀어지며 바닥에 끌렸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체사레의 팔뚝에 매달리듯 올라와 셔츠 주머니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기억 상자 안의 사진들이 흩어져 체사레의 가슴 위로 떨어졌다. 서기 피비가 카메라를 들고 달려와 체사레의 어깨 위에 올라앉았다. 찰칵. 체사레의 귀 옆에서 셔터 소리가 울렸다. 방청석의 피비들이 우르르 일어나 피고인석을 향해 몰려왔다. 에잇의 후드집업을 입은 피비, 체사레의 셔츠를 입은 피비, 방독면을 머리에 올린 피비, 사탕을 든 피비, 맨발의 피비, 양말 한 짝만 신은 피비. 전부 작았고 전부 따뜻했으며 전부 체사레의 품으로 밀려들었다. 체사레의 무릎 위에, 팔 위에, 어깨 위에, 가슴 위에 작은 피비들이 올라앉고 매달리고 기대었다. 아쿠아마린 머리카락이 체사레의 시야를 온통 채웠고, 풋사과 냄새가 겹겹이 쌓였으며, 작은 손가락들이 체사레의 셔츠와 머리카락과 손가락을 잡았다.


체사레는 두 팔로 그것들을 전부 감싸려 했으나 팔이 모자랐다. 작은 피비들이 너무 많았고 팔은 두 개뿐이었으므로, 체사레는 양팔을 가능한 한 넓게 벌려 최대한 많은 피비를 안에 넣었다. 그래도 빠져나가는 피비가 있었고, 빠져나간 피비는 돌아와 다시 파고들었다. 체사레의 가슴 위에서 판사 피비가 막대사탕을 체사레의 입술에 갖다 대었다. 딸기 맛이 입술에 닿았다.


10 | "......This is the strangest verdict I've ever received."(⋯⋯내가 받아 본 판결 중 가장 이상한 판결이야.)


판사 피비 | "Shh. You're serving your sentence. No talking."(쉿. 형 집행 중이야. 말하지 마.)


체사레는 입을 다물었다. 형벌이었으므로. 법정의 낮은 천장 아래에서, 작은 의자와 실패로 만든 판사석과 크레파스 서류와 막대사탕 법봉이 있는 이 엉성한 공간에서, 체사레 데 시카는 품 가득 안긴 아쿠아마린 색의 형벌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팔이 모자랐으나 부족함까지 포함해서 이것이 체사레의 형벌이었다. 눈을 감았다. 풋사과 냄새가 열두 겹으로 겹쳐진 어둠 속에서 체사레의 숨이 고르게 이어졌고, 작은 손가락들이 셔츠를 잡는 압력이 일정하게 유지되었으며, 그 압력은 현실의 어딘가에서 체사레의 가슴 위에 이마를 누르고 잠든 한 사람의 무게와 정확히 같았다.


눈을 떴을 때 입술에 딸기 맛이 남아 있었다.


있을 리가 없었다. 체사레는 혀끝으로 아랫입술 안쪽을 훑었고, 달큰한 잔향은 타액이 씻어 내는 속도보다 빠르게 사라졌으나 뇌가 기록한 감각은 지워지지 않았다. 천장이 보였다. 라운지의 형광등이 아니라 개인실의 비상등이었고, 붉은 빛이 시야의 가장자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의안 쪽 눈이 먼저 어둠에 적응했는데 그것은 적응이 아니라 애초에 빛을 감지하지 못하는 쪽이었으므로 착각이었다. 오른쪽 눈, 진짜 눈이 비상등의 붉은 점을 잡아내기까지 몇 번의 깜빡임이 필요했고, 그 사이에 가슴 위의 무게가 체사레의 의식을 완전히 깨웠다.


피비가 엎드려 있었다. 체사레의 흉골 위에 이마를 눌러 붙인 자세로, 아쿠아마린 머리카락이 체사레의 쇄골 양쪽으로 흩어져 내려와 있었다. 한쪽 손은 체사레의 옆구리를 잡고 있었고 다른 손은 자기 얼굴 밑에 깔려 있었으며, 숨을 쉴 때마다 체사레의 맨살 위로 따뜻한 공기가 퍼졌다가 식었다. 반복. 규칙적인 파동이었다. 체사레의 양팔은 무의식중에 피비의 등을 감싸고 있었고, 왼손은 피비의 견갑골 사이에, 오른손은 허리 아래쪽에 놓여 있었다. 잠들기 전에 의도한 자세가 아니었다. 잠든 동안 몸이 스스로 배치를 완성한 것이었다.


체사레는 양팔을 풀지 않은 채 천장을 보았다. 꿈이 벗겨지지 않았다. 보통의 꿈이라면 각성과 동시에 윤곽이 녹아 형태를 잃는데, 이 꿈은 구조가 명료했다. 실패로 만든 판사석. 크레파스 서류. 안경이 자꾸 흘러내리던 검사. 넥타이를 더 조여 버린 변호사. 막대사탕을 입에 문 채 판결을 내리던 판사의 늘어진 눈꼬리. 기소 내용 다섯 개가 순서대로 재생되었고, 체사레는 눈을 뜬 채로 그 재생을 지켜보았다.


손 씻기 과잉 잔소리.개인 소유물 압수.기억 독점.감정 혼란 야기.지나치게 키가 큼.


다섯 번째 죄목에서 체사레의 입꼬리가 떨렸다. 웃음이 완성되기 전에 멈추었으나 호흡이 한 박자 흔들렸고, 그 흔들림이 가슴 위의 피비에게 전달되었다. 피비의 어깨가 꿈틀거렸다. 이마가 체사레의 흉골 위에서 비벼졌고, 코가 쇄골 아래쪽을 건드렸으며, 잠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의 무의식적인 뒤척임이었다. 체사레는 움직이지 않았다. 피비의 수면 주기를 끊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러나 피비의 몸은 이미 각성의 경사면을 타고 미끄러지기 시작한 뒤였고, 한 번 시작된 뒤척임은 멈추지 않았다. 무릎이 접혔다가 펴졌고, 손이 체사레의 옆구리를 더듬었으며, 입술이 오물거렸다.


12 | "⋯⋯딸기."


체사레의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하필 피비의 이마가 올려져 있는 자리의 바로 아래에서. 피비가 그 진동을 느꼈는지 고개를 약간 들었고, 반쯤 감긴 눈 사이로 하늘색이 비상등의 붉은 빛에 물들어 보랏빛 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 초점이 없었다. 잠과 각성의 경계에 걸쳐 있는 눈이었다.


12 | "⋯⋯체사레 가슴에서 딸기 냄새 나."


10 | "Non c'è nessuna fragola qui."(여기에 딸기는 없어.)


12 | "있어. 맡았어. 달콤한 거."


체사레는 자기 가슴 위에 딸기 향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샤워 비누는 무향이었고 체취 위에 딸기가 올라탈 이유는 없었다. 꿈속의 판사 피비가 입술에 갖다 댄 막대사탕의 냄새가 현실로 번질 수는 없었다. 그러나 피비가 딸기를 맡았다고 했으므로 체사레는 반박하지 않았다. 피비의 후각은 화학 약품과 소독제와 방사능 잔여물의 냄새를 미세한 차이까지 판별할 수 있는 정밀도를 지녔으나,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냄새를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는 단순함도 지니고 있었다. 체사레는 두 가지 가능성 사이에서 후자를 택했다. 택하는 것이 편했으므로. 전자를 택하면 꿈 이야기를 해야 했고, 꿈 이야기를 하면 재판 이야기를 해야 했으며, 재판 이야기를 하면 기소 내용 다섯 개를 전부 인정한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해야 했다.


10 | "Forse è il tuo shampoo."(아마 네 샴푸 냄새일 거야.)


12 | "내 샴푸 사과인데."


10 | "Allora è la mela."(그럼 사과겠지.)


12 | "아닌데. 사과랑 딸기는 다른데. 나 그 정도는 알아."


피비가 몸을 일으켰다. 체사레의 가슴 위에 양손을 짚고 상체를 세우는 동작이었고, 그 무게 이동으로 체사레의 갈비뼈가 눌렸다. 피비의 얼굴에 베갯잇 자국이 대각선으로 찍혀 있었고, 한쪽 눈이 다른 쪽보다 더 부어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한쪽으로 뭉쳐 있었다. 인형 같은 얼굴의 조형이 수면의 잔해로 뒤틀려 있었으나, 눈만은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피비는 체사레의 가슴 위에 코를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진지한 동작이었다. 현장에서 화학 잔류물을 코로 감별할 때의 그 집중도와 동일한 집중도로 체사레의 피부 냄새를 분석하고 있었다.


12 | "여기. 여기서 나. 심장 위."


피비의 손가락이 체사레의 흉골 중앙을 꾹 눌렀다. 정확히 심장이 뛰는 자리의 바로 위였다. 체사레는 그 손가락의 압력을 느끼며 숨을 고르게 유지하려 했으나, 심박이 손가락 아래에서 읽히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심박을 고르지 못하게 만들었다. 순환의 역설이었다.


10 | "Forse ho sognato qualcosa di dolce."(아마 단 꿈을 꿨나 보지.)


12 | "무슨 꿈?"


10 | "......Un processo."(⋯⋯재판.)


12 | "재판? 체사레가? 왜?"


10 | "Ero l'imputato."(내가 피고인이었어.)


12 | "무슨 죄?!"


피비의 눈이 커졌다. 잠이 완전히 달아난 얼굴이었다. 체사레는 피비의 눈 안에서 걱정과 호기심이 섞이는 것을 보았고, 두 감정 중 호기심이 이기는 과정도 보았다. 피비는 걱정보다 궁금한 것이 항상 먼저였으며, 그것은 약물이 만든 특성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피비 자체의 기질이기도 했다. 체사레는 베개에 머리를 눌러 붙인 채 피비를 올려다보았다. 아래에서 위로. 꿈속에서 판사 피비가 체사레를 내려다보던 각도의 역전이었다.


10 | "Cinque capi d'accusa. Primo: troppo severo sul lavaggio delle mani. Secondo: confisca di proprietà personale. Terzo: monopolio della memoria. Quarto: confusione emotiva. Quinto: essere troppo alto."(다섯 가지 죄목. 첫째, 손 씻기에 대한 과도한 엄격함. 둘째, 개인 소유물 압수. 셋째, 기억 독점. 넷째, 감정 혼란 야기. 다섯째, 키가 지나치게 큰 것.)


12 | "⋯⋯키가 큰 게 죄야?"


10 | "A quanto pare, sì."(그런 것 같더라.)


12 | "⋯⋯ 그건 좀 불쌍해. 체사레가 원해서 큰 거 아닌데."


체사레의 입꼬리가 이번에는 완전히 올라갔다. 짧은 웃음이 새어나왔고, 그 웃음은 달큰하고 깔끔한 종류가 아니라 뒷맛이 쓴 종류였다. 꿈속에서 자기가 '눈높이에 태어날 예의가 없었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피비는 체사레의 웃음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기울이는 방향은 언제나 오른쪽이었고, 그 버릇은 약물과 무관하게 피비의 근골격이 가진 고유한 패턴이었다.


12 | "재판에서 졌어?"


10 | "Ho dichiarato colpevole su tutti i capi."(전 죄목에 유죄를 인정했어.)


12 | "왜?! 변호사는?!"


10 | "L'avvocato eri tu. Hai peggiorato le cose."(변호사가 너였어. 상황을 더 악화시켰지.)


12 | "⋯⋯나? 내가 변호사? 나 못하는데."


10 | "Lo so. Per questo ho perso."(알아. 그래서 졌어.)


피비의 입이 동그랗게 벌어졌다가 다물어졌다. 뭔가를 말하려다 말의 형태를 잡지 못한 채 입술만 움직이는 물고기 같은 동작이 반복되었고, 결국 피비는 체사레의 가슴 위에 턱을 괴며 물었다.


12 | "형벌은? 사형이야?"


10 | "Peggio."(더 심해.)


12 | "사형보다 심한 게 뭔데?!"


10 | "Abbracci. Ho dovuto abbracciare tutti in tribunale."(안아 주기. 법정에 있는 전부를 안아 줘야 했어.)


12 | "⋯⋯"


피비가 입을 다물었다. 눈이 깜빡거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 깜빡임 뒤에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고, 네 번째에는 볼이 둥글게 부풀었으며, 다섯 번째에는 웃음이 터졌다. 까르르. 새벽의 어둠 속에서 비상등 불빛만 드리운 방 안에서 그 웃음소리는 지나치게 밝았으나 불쾌하지 않았다. 체사레의 갈비뼈가 피비의 웃음으로 진동했고, 그 진동이 심장까지 내려갔다.


12 | "그거 형벌 아니잖아. 안아 주는 거잖아."


10 | "Era una punizione. Il giudice l'ha detto."(형벌이었어. 판사가 그렇게 말했어.)


12 | "판사도 나였어?"


10 | "Tutti erano te. Giudice, procuratore, avvocato, cancelliere, pubblico. Tutto te."(전부 너였어. 판사, 검사, 변호사, 서기, 방청객. 전부 너.)


12 | "⋯⋯와. 나 엄청 바빴겠다."


체사레는 웃지 않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호흡이 흔들렸고, 흔들린 호흡이 가슴을 움직였으며, 움직인 가슴이 피비의 턱을 들썩이게 했다. 피비는 그 들썩임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체사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비상등의 붉은 빛 아래에서 체사레의 오른쪽 눈이 젖어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빛의 굴절이거나 수면 직후의 안구 건조 반응이었을 것이었다. 피비는 그 구분을 하지 못했고,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대신 손을 뻗어 체사레의 오른쪽 눈 아래를 손가락 등으로 쓸었다. 거칠고 서투른 손길이었으나, 한 달 전 체사레가 피비의 눈 밑을 엄지로 닦아 주던 동작의 거울상 같았다.


12 | "체사레. 나 형벌 도와줄까."


10 | "Come?"(어떻게?)


12 | "안아 주면 되잖아. 지금. 진짜로."


체사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양팔에 힘을 주어 피비를 끌어당겼다. 피비의 상체가 체사레의 가슴 위로 무너져 내렸고, 이마가 체사레의 쇄골 아래에 묻혔으며, 아쿠아마린 머리카락이 체사레의 턱과 목 사이로 쏟아졌다. 풋사과 냄새가 코끝을 채웠다. 그 아래에 소독약의 날카로운 잔향이 깔려 있었고, 더 아래에는 약물의 달큰한 화학적 기저음이 있었다. 피비의 심장 박동이 체사레의 갈비뼈를 통해 전달되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블루 드롭이 유지하는 인공적인 안정 박동이었으나 체사레에게는 그것이 충분했다. 뛰고 있으므로.


꿈속에서 팔이 모자랐던 것은 안아야 할 피비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으나, 깨어난 뒤에는 피비가 하나뿐이었고, 팔은 두 개였으므로, 남는 것은 오히려 팔이었다. 남는 팔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등을 쓰는 것. 머리카락을 넘기는 것. 견갑골 사이의 온도를 확인하는 것. 체사레는 세 가지를 순서 없이 번갈아 하며 새벽의 나머지 시간을 채웠다. 피비는 체사레의 팔 안에서 다시 잠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했고, 깰 때마다 같은 말을 했다.


12 | "⋯⋯아직 있어?"


10 | "Ancora qui."(아직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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