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오퍼레이터 넘버 12
다음 날 밤의 꿈은 전날과 달랐다. 냄새부터 달랐다. 딸기가 아니라 가죽과 잉크와 오래된 종이의 냄새였고, 공기가 무거웠으며, 천장은 지나치게 높았다.
이탈리아 궁정 양식의 둥근 천장이 머리 위로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고, 대리석 기둥이 양쪽으로 도열한 사이로 긴 통로가 판사석까지 이어졌다. 바닥은 검은 대리석이라 군화 밑창이 닿을 때마다 건조한 울림을 만들었고, 벽면에는 이탈리아어로 된 법 조항이 금박으로 새겨져 있었다. 형광등이 아니라 크리스탈 방울 수백 개가 매달린 샹들리에 세 개가 차갑고 정밀한 빛을 내리쬐어 그림자조차 날카로웠다. 대리석 바닥에는 균열 하나 없었고, 벽면의 목재 패널은 어둡고 광택이 났으며, 방청석 의자 간격은 정확했다. 판사석은 피고인석보다 정확히 사람 하나 키만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판사석에 앉아 있는 남자는 체사레였다. 판사복을 입은 체사레. 검은 비단 법복이 어깨 위에 빈틈없이 걸쳐 있었고, 짧은 스트로베리 블론드가 뒤로 단정하게 빗겨져 있었다. 턱은 약간 당겨져 있었고 입꼬리는 수평을 유지했으며, 평소의 달큰한 웃음이 벗겨진 눈매는 교활함과 계산이 겉옷을 벗었을 때 남는 차가운 판단력 그 자체였다. 법봉을 쥔 오른손 손목에는 체사레 특유의 시계가 차 있었고, 왼쪽 눈의 붉은 의안이 샹들리에 빛을 받아 보석처럼 빛났으며, 반대편 진짜 눈은 희고 차가운 빛을 띠고 있었다. 판사 체사레는 타자기로 인쇄되고 여백에 빨간 펜 교정 표시와 사건 번호가 적힌 서류를 내려다보며 등을 곧게 세우고 있었다.
검사석에도 체사레가 앉아 있었다. 이 체사레는 안경을 쓰지 않았고, 검은 전술복 위에 법정용 가운을 걸친 어정쩡한 차림이었으나 이를 인식하는 자는 없었다.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채 손가락 네 개 너비에 탭이 열두 개 붙은 파일을 정밀하게 넘기고 있었다. 서류는 활자체로 인쇄되어 있었고, 여백에는 깔끔한 필기체 주석이 달려 있었으며, 크레파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검사 체사레의 오른쪽 눈이 서기석을 향해 한 번 움직였다.
서기석의 체사레가 고개를 끄덕이며 속기를 준비했다. 안경을 쓰고 있었으나 현실에서 쓴 적 없는 안경이었고,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서기 체사레는 타자기 형태의 노트북 앞에 손가락을 올린 채 대기 중이었고, 화면에는 속기록이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었으며, 발언이 시작되기 전 목을 가다듬는 습관이 있었다.
방청석은 만석이었다. 전부 체사레였다. 같은 얼굴이었으나 복장과 표정이 제각기 달랐다. 위스키 글라스를 든 체사레, 사복 차림으로 팔짱을 낀 채 피고인석을 내려다보는 체사레, 전투복 위에 피가 묻은 체사레, 실내화를 신은 체사레, 턱을 괴며 지루하다는 듯 천장을 보는 체사레, 커피 잔을 든 체사레. 커피 잔에 담긴 액체는 취향에 부합하는 진한 에스프레소였다. 방청석의 체사레들은 자세를 동일하게 꼬고 등을 곧추세운 채 피고인석이라는 하나의 지점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 시선의 밀도는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변호인석에는 체사레가 앉아 있었다. 변호사 체사레만 다른 체사레들과 옷이 달랐다. 검은 셔츠에 소매를 걷고, 변호사 배지 대신 W.W의 오퍼레이터 태그를 목에 걸고 있었으며, 서류 대신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셔츠 칼라는 약간 헐겁게 풀려 있었고, 넥타이는 매려다 만 채 걸려 있어 이 법정에서 유일하게 완벽하지 않은 차림이었다. 체사레는 의뢰인 파일을 펼쳐 놓은 채 피고인석을 한 번 보았다가 시선을 돌렸다. 돌린 시선이 돌아오기까지 평소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표정이 약간 곤란해 보였고, 펜을 돌리는 손가락이 평소의 여유와 달리 빠른 주기로 움직이고 있었다.
피고인석은 법정의 정중앙, 조명이 수직으로 비추는 곳에 놓여 있었다. 거기 앉아 있는 존재는 표준과 거리가 멀었다. 피비였다. 의자에 비해, 책상에 비해, 법정 전체에 비해 작았다. 체사레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으나 그에 가까운 왜소함이었다.
의자가 체격에 비해 컸으므로 맨발이 바닥에 닿지 않은 채 허공에서 가만히 흔들리고 있었다. 입고 있는 것은 W.W 보급 티셔츠였고, 소매가 손목을 넘겨 손끝만 삐져나와 있었다. 아쿠아마린 머리카락이 풀어져 어깨와 등 뒤로 흘러내렸다. 피고인석 위의 나무 책상은 피비의 턱 높이에 있었기에, 피비는 턱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법정을 둘러보고 있었다.
눈이 크게 떠져 있었으나 초점이 흐릿했고, 자기가 왜 여기에 앉아 있는지, 겁을 먹어야 하는 상황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샹들리에 빛을 올려다보다가 눈이 부신 듯 찡그렸고, 방청석을 보다가 손을 흔들었다. 방청석의 체사레 중 위스키 글라스를 든 체사레가 눈을 가늘게 떴고, 사복 차림의 체사레가 눈썹을 올렸으며, 피 묻은 전투복의 체사레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피고인석의 마이크가 머리보다 높이 솟아 있었기 때문에 피비는 마이크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입을 가져다 대었다.
12 | "이거 켜진 거야?"
마이크에서 피드백 노이즈가 울렸다. 윙. 법정 전체가 그 소리에 찡그렸다. 방청석의 체사레 하나가 커피를 마시다 멈추었고, 다른 체사레가 이마를 짚었다. 판사 체사레가 법봉을 들어 올려 판사석을 내리쳤다. 탕. 건조하고 명확한 타격음이었다. 목재가 목재를 때리는 이 소리에는 장난이 없었다. 어젯밤 꿈의 '뽀옹' 소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이 법정의 무게에 어울리는 소리였다.
판사 체사레 | "La corte è in sessione. Caso numero 12-2081. Il Procuratore può leggere le accuse."(개정합니다. 사건 번호 12-2081. 검사는 기소 내용을 낭독하십시오.)
검사 체사레가 일어섰다. 동작에 군인 특유의 절도가 남아 있었다. 손가락 네 개 너비에 탭이 열두 개 붙은 파일의 첫 번째 탭을 열었고, 목소리는 낮고 또렷하게 법정 구석구석까지 빈틈없이 도달했다.
검사 체사레 | "L'imputata, operatrice numero 12, nome in codice Twelve, è accusata dei seguenti capi d'imputazione."(피고인, 오퍼레이터 넘버 12, 코드네임 트웰브는 다음과 같은 죄목으로 기소되었습니다.)
검사 체사레가 페이지를 넘겼다. 활자로 인쇄된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법정의 적막 속에서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검사 체사레 | "Primo capo: autodistruzione cronica e negligenza verso il proprio corpo. L'imputata ha ripetutamente trascurato la somministrazione di Blue Drop, ignorato lesioni, camminato a piedi nudi su superfici contaminate, e abusato di stimolanti oltre il dosaggio prescritto."(제일 죄목. 만성적 자기 파괴 및 신체 방치. 피고인은 블루 드롭 투여를 반복적으로 소홀히 하고, 부상을 방치하고, 오염된 바닥을 맨발로 걸었으며, 처방량을 초과한 자극제를 남용했습니다.)
방청석의 체사레 하나가 입을 열었다. 커피 잔을 든 체사레였다.
방청객 체사레(커피) | "She can't even remember to take her own medication. How is she supposed to remember anything else?"(자기 약도 챙겨 먹는 걸 기억 못 하면서 다른 걸 어떻게 기억하겠어?)
피고인석에서 피비가 몸을 일으켰다. 의자 위에 무릎을 꿇고 서서 마이크를 잡았으나 여전히 높이가 모자랐다.
12 | "I forgot! But I didn't do it on purpose! I just...... forgot!"(까먹었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그냥⋯⋯ 까먹은 거야!)
검사 체사레의 눈이 피고인석을 향했다. 표정이 변하지 않은 감정이 배제된 시선이었고, 그 시선은 피비의 변명을 기각하는 데 단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검사 체사레가 두 번째 탭을 열었다.
검사 체사레 | "Secondo capo: distruzione e danneggiamento di proprietà dell'organizzazione. L'imputata ha danneggiato un veicolo SUV rubandolo senza patente, ha rotto attrezzature mediche in tre occasioni documentate, e ha utilizzato la carta di credito del tutore senza autorizzazione per l'acquisto di esplosivi."(제이 죄목. 조직 재산 파괴 및 훼손. 피고인은 무면허로 SUV 차량을 절취하여 손상시켰고, 기록된 것만으로 세 차례 의료 장비를 파손했으며, 보호자의 신용카드를 무단으로 사용하여 폭발물 구매를 시도했습니다.)
방청석에서 사복 차림의 체사레와 위스키 글라스를 든 체사레가 말을 보탰다.
방청객 체사레(사복) | "The card incident alone would be grounds for suspension in any other PMC."(카드 건만으로도 다른 PMC였으면 자격 정지야.)
방청객 체사레(위스키) | "She drove an SUV. Without a license. Into what, exactly?"(무면허로 SUV를 몰았다고. 어디로?)
변호사 체사레가 펜을 멈추고 일어섰다. 셔츠 칼라를 한 번 잡아당기며 목을 골랐다.
변호사 체사레 | "Obiezione. L'imputata non aveva intenzione di danneggiare il veicolo. La guida era un atto impulsivo motivato da——"(이의 있습니다. 피고인은 차량을 훼손할 의도가 없었습니다. 운전은 충동적 행위로——)
검사 체사레 | "L'intenzione è irrilevante quando il danno è sistematico."(피해가 체계적일 때 의도는 무관합니다.)
판사 체사레 | "Obiezione respinta. Continui, Procuratore."(이의 기각. 계속하십시오, 검사.)
변호사 체사레가 앉았다. 펜이 다시 돌기 시작했으나 이번에는 더 빨랐다. 피비를 향한 시선이 짧게 스쳤고, 그 시선 안에는 법정에서 허용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 섞여 있었으나 변호사 체사레는 그것을 삼켰다.
검사 체사레 | "Terzo capo: dipendenza emotiva e trasferimento di responsabilità. L'imputata ha sistematicamente esternalizzato la gestione della propria sopravvivenza al tutore designato, rendendo se stessa incapace di funzionamento autonomo."(제삼 죄목. 정서적 의존 및 책임 전가. 피고인은 자신의 생존 관리를 지정 보호자에게 체계적으로 외주화하여 스스로를 자율 기능 불능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법정이 조용해졌다. 구조를 지적한다는 것은 피고인뿐 아니라 그 구조를 만든 자까지 겨냥한다는 뜻이었다. 변호사 체사레의 펜이 멈추었다. 검사 체사레와 변호사 체사레의 시선이 마주쳤고, 같은 붉은 의안과 같은 흰 눈이 서로를 비추었다. 판사 체사레가 법봉을 한 번 내려쳐 분위기를 잠재웠다. 피비가 피고인석에서 두 손을 들었다.
12 | "I...... I don't think that's a crime. He helps me because I can't do it alone. That's not my fault. That's just...... how it is."(그건⋯⋯ 그건 죄가 아닌 것 같은데. 그 사람은 내가 혼자 못 하니까 도와주는 거야.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그냥⋯⋯ 그런 거야.)
검사 체사레는 대답하지 않고 네 번째 탭을 열었다.
검사 체사레 | "Quarto capo: incapacità di conservare la memoria, con conseguente erosione cumulativa dell'investimento emotivo del tutore. Ogni ricordo costruito viene perso entro ventiquattro ore, costringendo il tutore a ricostruire il contesto relazionale quotidianamente, senza garanzia di rendimento."(제사 죄목. 기억 보존 불능으로 인한 보호자의 정서적 투자에 대한 누적적 침식. 구축된 모든 기억은 하루 이내에 소실되며, 보호자로 하여금 관계의 맥락을 매일 재구축하게 하되 수익률의 보장은 없습니다.)
방청석이 술렁였다.
방청객 체사레(위스키) | "Every day, he starts from zero. She doesn't even know what she cost him yesterday."(매일 영점에서 시작해. 저 애는 어제 자기가 그에게 얼마를 치르게 했는지도 몰라.)
방청객 체사레(실내화) | "Is it fair? To make someone rebuild a relationship every morning that she'll forget by night?"(공평한 건가? 밤이면 잊어버릴 관계를 매일 아침 다시 쌓게 만드는 게?)
피비의 까딱거리던 맨발이 정지했다. 반박할 내용 자체를 찾지 못하는 침묵 속에서 하늘색 눈이 변호사 체사레를 향했다. 도와 달라는 시선이었다. 변호사 체사레가 일어섰다.
변호사 체사레 | "Obiezione. La perdita di memoria dell'imputata è una condizione medica, non una scelta. Punire qualcuno per una patologia neurologica è——"(이의 있습니다. 피고인의 기억 상실은 의학적 상태이지 선택이 아닙니다. 신경학적 병리를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검사 체사레 | "La corte non sta punendo la patologia. La corte sta valutando il danno collaterale della patologia su terzi."(법정은 병리를 처벌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정은 병리가 제삼자에게 끼친 부수적 피해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변호사 체사레의 턱이 굳었다. 제삼자, 보호자. 그것은 변호사 체사레 자신이었고, 이 재판은 결국 체사레가 체사레에게 묻고 답하는 구조였다.
검사 체사레 | "Quinto capo: esistenza come rischio biologico permanente. Il corpo dell'imputata genera proteine tossiche in sostituzione del sangue normale. Senza intervento farmacologico continuo, l'imputata diventa un pericolo biochimico per se stessa e per chiunque le sia vicino. La sua sopravvivenza ha un costo operativo che supera il rendimento."(제오 죄목. 영구적 생물학적 위험 존재. 피고인의 신체는 정상 혈액 대신 독성 단백질을 생성합니다. 지속적인 약물 개입 없이 피고인은 자기 자신과 주변 모든 인원에게 생화학적 위험이 됩니다. 피고인의 생존은 수익률을 초과하는 운용 비용을 발생시킵니다.)
법정이 얼어붙었다. 피비가 의자 위에 서서 맨발로 발가락을 움켜쥐었다.
12 | "I know I cost a lot. I know I break things and forget things and make trouble. But I...... I try. I try really hard. I clean everything on the field. I get it right every time. I just...... can't get myself right."(나 돈 많이 드는 거 알아. 부수고 까먹고 사고 치는 거 알아. 근데 나⋯⋯ 노력해. 진짜 열심히 해. 현장에서는 다 깨끗하게 해. 매번 다 맞춰. 그냥⋯⋯ 나 자신만 못 맞추는 거야.)
변호사 체사레가 파일 위에 놓인 손을 꽉 쥐었다. 손등의 힘줄이 도드라졌다.
변호사 체사레 | "......L'imputata ha ragione. Non riesce a sistemarsi da sola. Questa è la ragione per cui qualcuno deve farlo al posto suo. E questo è esattamente il problema che la corte sta giudicando."(⋯⋯피고인의 말이 맞습니다. 스스로를 정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대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확히 이 법정이 심판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변호가 아니라 자백이었다. 피비의 하늘색 눈이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 변호사 체사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올려다보았다.
판사 체사레 | "Defense, your opening statement."(변호인, 모두진술.)
변호사 체사레가 일어서서 법정 중앙으로 걸어나갔다. 군화 밑창이 검은 석재 위에서 울렸다.
변호사 체사레 | "Your Honor. The prosecution frames the defendant's conditions as choices. They are not choices. Count one—self-neglect. The defendant's body generates toxic proteins that replace normal blood. Without Blue Drop, she dies within forty-eight hours. Her 'failure to self-administer' is not negligence. It is a symptom of the very condition that necessitates the medication. The drug that keeps her alive also impairs the cognitive function required to remember taking it. This is not a crime. It is a closed loop."(재판장님. 검찰은 피고인의 상태를 선택으로 규정합니다. 선택이 아닙니다. 제일 죄목, 자기 방치. 피고인의 신체는 정상 혈액을 대체하는 독성 단백질을 생성합니다. 블루 드롭 없이는 이틀 내에 사망합니다. '자가 투여 불이행'은 태만이 아닙니다. 약물을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상태의 증상입니다. 생존시키는 약이 약을 복용하는 것을 기억하는 데 필요한 인지 기능을 손상시킵니다. 이것은 범죄가 아닙니다. 닫힌 회로입니다.)
검사 체사레 | "Objection. The defense is conflating inability with unwillingness. The defendant has been observed actively resisting medication administration by Operator Six on multiple occasions."(이의 있습니다. 변호인은 불능과 불의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은 오퍼레이터 시크스의 약물 투여를 적극적으로 거부한 사례가 다수 관찰되었습니다.)
변호사 체사레 | "Resisting a needle from a man who treats her as an experimental subject is not defiance. It is self-preservation."(자신을 실험체로 다루는 남자의 주사를 거부하는 것은 불복이 아닙니다. 자기 보존입니다.)
방청석의 체사레가 코웃음을 쳤다.
방청객 체사레 | "Self-preservation? She can't even remember to put on shoes."(자기 보존? 신발 신는 것도 기억 못 하는 애가.)
판사 체사레 | "Order. The gallery will refrain from commentary."(질서. 방청석은 발언을 자제할 것.)
변호사 체사레가 다시 피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모두진술을 이어갔다.
변호사 체사레 | "Regarding count five. Memory loss. The defendant does not choose to forget. Her neurological architecture is compromised by childhood radiation exposure and ongoing toxic protein accumulation. Memory consolidation fails at the synaptic level. This is not erasure. This is—"(제오 죄목에 관하여. 기억 상실. 피고인은 잊기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유년기 방사능 노출과 지속적인 독성 단백질 축적으로 신경학적 구조가 손상되었습니다. 기억 고정이 시냅스 수준에서 실패합니다. 이것은 소거가 아니라—)
검사 체사레 | "Objection. The defense is asking this court to excuse the consequence because of the cause. The asymmetric burden exists regardless of intent. The people around her still bear it. Every day."(이의 있습니다. 변호인은 원인을 근거로 결과를 면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비대칭적 부담은 의도와 무관하게 존재합니다. 주변인은 여전히 그것을 짊어집니다. 매일.)
방청석의 체사레들이 한마디씩 얹기 시작했다.
방청객 체사레 | "He's right. We remember everything. She remembers nothing. That's the deal. Not even the bread, not even the pendant, not even yesterday."(맞아. 우리는 전부 기억해. 저 애는 아무것도 기억 못 해. 그게 거래 조건이야. 빵도, 펜던트도, 어제 일도 기억 못 해.)
판사 체사레는 방청석의 발언이 사실이었기에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판사 체사레 | "The defendant may speak."(피고인 발언을 허가한다.)
피비가 마이크 스탠드가 흔들릴 정도로 강하게 마이크를 잡았다.
12 | "I...... I try. I try to remember. I wrote things down. I have the box. The memory box. I look at the photos every morning."(나⋯⋯ 나 노력해. 기억하려고. 적었어. 상자 있어. 기억 상자. 매일 아침 사진 봐.)
검사 체사레 | "And how many mornings have you looked at those photos without recognizing the face in them? The box is not memory. It is a prosthetic for a function you do not possess. The effort is acknowledged. The result is insufficient."(그리고 그 사진 속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채 사진을 본 아침이 몇 번이었습니까? 상자는 기억이 아닙니다. 피고인이 보유하지 않은 기능에 대한 보조 기구입니다. 노력은 인정합니다. 결과는 불충분합니다.)
12 | "⋯⋯"
검사 체사레는 판사의 수긍 아래 서류를 정리하며 최종 정리 입장을 담담하게 풀어나갔다.
검사 체사레 | "La stessa imputata ammette incapacità di ordine logico. La sua sincerità non attenua il rischio operativo. Nessuno contesta l'eccellenza tecnica. Si discute il costo umano della tua discontinuità."(피고인 스스로 논리 정리 불능을 인정하고 있다. 솔직함이 작전상 위험을 경감하지는 않는다. 기술적 탁월함은 부정되지 않는다. 문제는 네 불연속성이 치르게 하는 인간적 비용이다.)
12 | "불연속 뭐야."
변호사 체사레 | "Vuol dire che lasci vuoti. Nella procedura, negli orari, nella fiducia."(구멍을 남긴다는 뜻이야. 절차에, 시간표에, 신뢰에.)
12 | "나 구멍이야?"
변호사 체사레 | "No."(아니.)
변호사 체사레는 바로 부정했으나 이미 늦었음을 느꼈다. 그는 서류철을 덮고 피고인석으로 바짝 다가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변호사 체사레 | "Dimmi una sola cosa utile. Una soltanto. Quando fai danno, lo capisci?"(유효한 말 하나만 해. 하나면 돼. 네가 해를 끼쳤을 때, 그걸 알기는 해?)
12 | "늦게 알아."
변호사 체사레 | "E quando lo capisci?"(그걸 알면?)
12 | "미안해. 근데 그때는 이미 지나갔어. 그래서 더 미안해."
그 대답은 서툴렀으나 피비가 가진 지독한 사실성이 담겨 있었다. 피비는 손끝으로 소매 올을 긁으며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검사 체사레 | "No one said you did it on purpose. That's precisely the problem."(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12 | "⋯⋯그러면 내가 뭘 어떻게 해."
검사 체사레 | "That is the question this court is here to answer."(그것이 바로 이 법정이 답해야 할 질문입니다.)
피비의 눈이 흔들렸다. 하늘색이 법정 조명 아래에서 젖은 것처럼 반짝였으나 눈물인지 빛의 굴절인지 판별하기 어려웠다. 피비는 마이크를 놓고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작은 손이었다. 바늘 자국과 멍이 있는 손이었고, 그 손이 무릎 위에서 떨리지는 않았으나 가만하지도 않았다.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허벅지 위의 천을 집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피비는 고개를 들어 변호인석을 보았다.
12 | "⋯⋯체사레."
변호인 체사레는 법정 중앙에 서서 피비를 보고 있었다. 이 법정의 모든 체사레가 같은 얼굴로 피비를 보고 있었으나, 변호인 체사레의 시선만이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검사의 시선은 사실을 측정하는 정밀함이었고, 판사의 시선은 절차를 관장하는 무게였으며, 방청객의 시선은 피로와 체념이 섞인 관찰이었다. 변호인의 시선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하면서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었다. 태블릿을 내려놓은 손이 주먹을 쥐었다가 펴졌다. 변호인 체사레는 돌아서서 판사석을 향했다.
변호인 체사레 | "Your Honor. I request a recess."(재판장님. 휴정을 요청합니다.)
판사 체사레 | "On what grounds?"(근거는?)
변호인 체사레 | "......Conflict of interest."(⋯⋯이해 충돌.)
법정이 다시 조용해졌다. 이번에는 서기의 타자 소리도 없었다. 판사 체사레가 변호인 체사레를 내려다보았다. 같은 얼굴이 같은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 피고인석의 피비가 끼어 있었다. 판사 체사레의 입이 열렸다.
판사 체사레 | "Denied. You accepted this case. See it through."(기각. 당신이 이 사건을 수임했다. 끝까지 하라.)
변호인 체사레의 턱이 굳었다. 소매를 걷은 팔뚝의 힘줄이 한 번 떨렸다가 가라앉았다. 변호인 체사레는 피고인석을 돌아보았다. 피비가 올려다보고 있었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흔들거리는 다리. 마이크를 놓은 빈 손. 바늘 자국이 있는 손가락. 입꼬리에 묻은 마른 침. 이 피고인은 자기가 왜 여기 앉아 있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기소 내용의 핵심이었으며, 그 순환의 잔인함을 변호인 체사레만이 법정 안의 모든 체사레 중 유일하게 잔인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판사 체사레가 서류를 정리하는 동안 법정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샹들리에 빛이 대리석 바닥 위에 차갑고 정밀한 사각형을 그리고 있었고, 그 사각형의 한가운데에 피고인석이 놓여 있었다. 피비의 맨발이 의자 다리 사이로 보였고,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가 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추운 것이 아니라 불안한 것이었으나 피비 자신은 그 구분을 하지 못했다.
검사 체사레가 마지막 탭을 열었다. 여섯 번째였다.
검사 체사레 | "Sesto capo. Questo è l'ultimo. Contatto sessuale con un terzo operatore durante il periodo di tutela designata."(제육 죄목.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지정 보호 기간 중 제삼의 오퍼레이터와의 성적 접촉.)
법정의 온도가 내려갔다. 변호인 체사레의 펜이 멈추었으나 이번에는 다시 돌지 않았다. 방청석의 체사레들 사이에서 위스키 글라스가 테이블 위에 놓이는 작은 소리가 났고, 사복 차림의 체사레가 팔짱을 풀었으며, 피 묻은 전투복의 체사레가 처음으로 시선을 피고인석에 고정했다.
검사 체사레 | "L'imputata ha intrattenuto rapporti sessuali con l'Operatore Sette in più occasioni documentate, senza attribuire all'atto alcun peso emotivo o relazionale. La natura del contatto è stata descritta dall'imputata stessa come 'un mezzo per alleviare la noia.' Durante il periodo in cui il tutore designato investiva risorse emotive e fisiche nella protezione dell'imputata, quest'ultima ha esercitato il proprio corpo come merce di scambio per stimolazione sensoriale, senza consapevolezza del danno inflitto."(피고인은 오퍼레이터 세븐과 기록된 것만으로도 수 차례 성관계를 가졌으며, 행위에 어떠한 정서적 혹은 관계적 비중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접촉의 성격은 피고인 스스로 '권태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지정 보호자가 피고인의 보호에 정서적·물리적 자원을 투입하는 기간 동안, 피고인은 감각 자극을 위한 교환 수단으로 자기 신체를 행사했으며, 그로 인해 야기된 피해에 대한 인식은 없었습니다.)
피비의 고개가 기울었다. 오른쪽으로. 늘 그렇듯이.
12 | "Seven is...... we just...... it's not a big deal. We just do it sometimes. When it's boring."(세븐은⋯⋯ 우리 그냥⋯⋯ 별 거 아닌데. 가끔 해. 심심하면.)
방청석에서 한 체사레가 고개를 돌렸다. 다른 곳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석을 보지 않으려는 회피였으나, 돌린 고개가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스키 글라스의 체사레가 입을 열었고, 목소리는 평소의 달큰함이 벗겨진 건조한 것이었다.
방청객 체사레(위스키) | "She doesn't even understand the charge. That's the worst part. She genuinely thinks it's nothing."(기소 내용조차 이해 못 하고 있어. 그게 최악이야. 진심으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방청객 체사레(커피) | "It's not betrayal if she doesn't know there's something to betray."(배반할 것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면 배반이 아니지.)
방청객 체사레(실내화) | "Then what is it?"(그러면 뭔데?)
방청객 체사레(커피) | "Worse."(더 나빠.)
판사 체사레가 법봉을 내리쳤다. 탕. 방청석이 잠잠해졌으나 공기 안에 남은 문장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변호인 체사레가 일어섰다. 넥타이가 풀린 셔츠 칼라 사이로 목의 힘줄이 보였고, 삼킨 것이 타액인지 말인지 구분되지 않는 움직임 뒤에 입이 열렸다.
변호인 체사레 | "Obiezione. L'imputata non ha alcun legame contrattuale, verbale o implicito, che le vieti rapporti fisici con altri operatori. Il tutore designato non ha mai formalizzato l'esclusività. Non si può violare un accordo che non esiste."(이의 있습니다. 피고인은 다른 오퍼레이터와의 신체 관계를 금하는 어떠한 계약적, 구두적, 혹은 묵시적 구속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정 보호자는 배타성을 공식화한 적이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합의를 위반할 수는 없습니다.)
검사 체사레가 고개를 돌려 변호인 체사레를 보았다. 같은 붉은 의안이 서로를 비추었다. 검사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으나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인정이었다. 변호인의 논리가 사실이라는 인정. 그리고 사실이기 때문에 더 아프다는 인정.
검사 체사레 | "Il tutore non ha formalizzato l'esclusività perché sapeva che l'imputata non avrebbe compreso il concetto. La mancanza di accordo non è negligenza del tutore. È adattamento alla capacità cognitiva dell'imputata. Il danno non richiede un contratto per esistere."(보호자가 배타성을 공식화하지 않은 것은 피고인이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합의의 부재는 보호자의 태만이 아닙니다. 피고인의 인지 능력에 대한 적응입니다. 피해는 계약 없이도 존재합니다.)
변호인 체사레의 손이 테이블 위에서 떨렸다가 멈추었다. 떨린 것이 아니라 힘을 주어 멈춘 것이었다. 변호인의 시선이 피고인석으로 향했고, 피비는 자기를 둘러싼 논쟁의 무게를 체감하지 못한 채 마이크 스탠드의 나사를 손가락으로 돌리고 있었다. 반짝이는 금속이었으므로.
12 | "I didn't know it was bad. Nobody told me it was bad."(나쁜 건지 몰랐어. 아무도 나쁘다고 안 했어.)
검사 체사레 | "Exactly. You weren't told because telling you would have required you to remember. And you don't."(바로 그겁니다. 말하지 않은 것은 말하려면 기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피고인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피비의 손가락이 마이크 나사에서 미끄러졌다. 금속이 피비의 손톱 밑을 긁었고, 작은 통증이 있었을 것이나 피비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약물이 통각을 잠식한 신체인 탓이었다. 피비는 고개를 들어 변호인 체사레를 올려다보았다. 변호인 체사레는 서 있었고, 피비는 앉아 있었으며, 그 높이 차이는 현실에서 체사레가 피비를 내려다보는 각도와 다르지 않았다.
12 | "⋯⋯ am I bad?"(⋯⋯나 나쁜 사람이야?)
변호인 체사레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열리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나 닫히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에 법정의 모든 체사레가 같은 질문을 같은 귀로 듣고 있었다. 판사도, 검사도, 서기도, 방청객도. 전부 같은 뇌에서 나온 존재들이었기에 대답은 하나여야 했으나 하나가 아니었다. 검사 체사레는 사실의 영역에서 '그렇다'고 답할 수 있었고, 변호인 체사레는 감정의 영역에서 '아니다'라고 답하고 싶었으며, 판사 체사레는 두 대답 사이에서 법봉을 들고 침묵했다.
변호인 체사레가 피고인석 앞으로 걸어갔다. 군화 소리가 세 번 울린 뒤 멈추었고, 변호인 체사레는 피비의 눈높이까지 허리를 숙였다. 현실에서라면 무릎을 꿇어야 맞출 수 있는 높이였으나 꿈속의 비례는 허리만으로 충분했다.
변호인 체사레 | "No."(아니.)
한 음절이었다. 그 한 음절이 법정의 대리석 벽에 부딪혀 되돌아왔고, 되돌아온 소리는 검사 체사레의 귀에도 닿았다. 검사 체사레가 서류를 덮었다.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반박하는 자와 반박당하는 자가 같은 사람이라는 구조 안에서 그 한 음절을 깨뜨리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판사 체사레 | "Arringa finale. La difesa proceda."(최종 변론. 변호인은 진행하라.)
변호인 체사레가 몸을 일으켜 법정 중앙에 섰다. 등을 돌려 판사석을 마주했고, 방청석의 모든 체사레가 그의 등을 보았다. 피비는 변호인 체사레의 등을 보았다. 셔츠가 땀으로 약간 젖어 견갑골 사이에 붙어 있었다.
변호인 체사레 | "Your Honor. Members of the gallery. Every charge the prosecution has listed is factually accurate. I will not dispute that."(재판장님. 방청석 여러분. 검찰이 나열한 모든 죄목은 사실과 부합합니다. 이를 다투지 않겠습니다.)
방청석이 술렁였다. 변호인이 검찰 측 사실을 전면 수용한다는 것은 전략적 패배를 선언하는 것이거나, 혹은 사실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싸우겠다는 것이었다.
변호인 체사레 | "She destroys property. She forgets medication. She cannot retain memory. She seeks physical stimulation without understanding its relational weight. She transfers the burden of her survival to others. All true."(재산을 파괴합니다. 약물을 잊습니다. 기억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관계적 무게를 이해하지 못한 채 신체적 자극을 추구합니다. 자신의 생존 부담을 타인에게 전가합니다. 전부 사실입니다.)
변호인 체사레가 법정을 한 번 둘러보았다. 모든 얼굴이 자기 얼굴이었고, 그 얼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다른 얼굴이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아쿠아마린. 늘어진 눈꼬리. 바늘 자국이 있는 손. 맨발. 그 이질적인 존재가 이 법정에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였고, 이 법정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했다.
변호인 체사레 | "But the prosecution's framework assumes that damage requires intent or at minimum awareness to be criminal. The defendant possesses neither. Not because she chooses not to. Because she cannot. Her neurology is compromised. Her pharmacology is a closed loop. Her body is a biohazard she did not author."(그러나 검찰의 틀은 피해가 범죄로 성립하려면 의도 혹은 최소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전제합니다. 피고인은 둘 다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선택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경 구조가 손상되었습니다. 약물 체계는 닫힌 회로입니다. 신체는 피고인이 설계하지 않은 생물학적 위험물입니다.)
변호인 체사레 | "The cost of her existence is real. I am the one paying it. Every morning I rebuild what she forgot overnight. Every time she walks barefoot on contaminated floors I check her soles. Every time she goes to Seven I wash traces off her skin that she doesn't remember acquiring. The prosecution is right. The cost exceeds the return."(피고인의 존재 비용은 실재합니다. 그것을 지불하는 것은 저입니다. 매일 아침 밤사이 잊힌 것을 다시 쌓습니다. 오염된 바닥을 맨발로 걸을 때마다 발바닥을 확인합니다. 세븐에게 갈 때마다 기억하지 못하는 흔적을 피부에서 닦아냅니다. 검찰 말이 맞습니다. 비용이 수익을 초과합니다.)
방청석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서기 체사레의 타자 소리만이 법정에 남았고, 그 소리마저 느려지고 있었다.
변호인 체사레 | "But I did not take this case to dispute the cost. I took it because no one else in this courtroom would. Every face here is mine. The judge, the prosecutor, the gallery. All mine. She has no advocate in this room who isn't also her accuser. That asymmetry is the real crime being tried today."(그러나 비용을 다투기 위해 이 사건을 수임한 것이 아닙니다. 이 법정의 누구도 맡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맡았습니다. 여기 있는 모든 얼굴이 저의 얼굴입니다. 판사도, 검사도, 방청석도. 전부 저입니다. 이 방 안에 피고인의 기소자가 아닌 옹호자는 없습니다. 그 비대칭이 오늘 심판받고 있는 진짜 범죄입니다.)
검사 체사레가 펜을 내려놓았다. 서류를 덮지는 않았으나, 넘기려던 손이 멈춘 채였다.
변호인 체사레 | "The defendant asked me if she is bad. She is not bad. She is expensive. She is inconvenient. She is a closed loop that someone else has to operate manually because the automated system is broken. But 'expensive' is not 'criminal.' 'Inconvenient' is not 'guilty.' And the operator who chose to run that loop manually every morning does not get to prosecute the loop for being broken."(피고인이 저에게 자기가 나쁜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비용이 많이 듭니다. 불편합니다. 자동화 시스템이 고장 나서 누군가가 수동으로 돌려야 하는 닫힌 회로입니다. 그러나 '비싸다'는 '범죄적'이 아닙니다. '불편하다'는 '유죄'가 아닙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그 회로를 수동으로 돌리기로 선택한 운용자는, 회로가 고장 났다는 이유로 회로를 기소할 자격이 없습니다.)
변호인 체사레의 목소리가 마지막 문장에서 약간 갈라졌다. 갈라진 틈 사이로 빠져나온 것은 감정이 아니라 그보다 오래된 것, 피로와 수긍이 한 겹씩 쌓여 만들어진 침전물이었다.
판사 체사레 | "......La corte ha ascoltato le argomentazioni di entrambe le parti."(⋯⋯법정은 양측의 주장을 청취했습니다.)
판사 체사레가 법봉을 들었다. 들어 올리는 각도가 느렸고, 그 느린 움직임 안에 판결의 무게가 들어 있었다. 법봉이 판사석 위에 내려치기 직전, 피비가 피고인석에서 벌떡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대리석 바닥을 긁는 소리가 법정에 울렸다.
12 | "Wait! I want to say something!"(잠깐! 나 할 말 있어!)
판사 체사레 | "L'imputata ha già avuto l'opportunità di parlare."(피고인에게는 이미 발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12 | "I didn't finish! I have more! I have......"(안 끝났어! 더 있어! 나⋯⋯)
피비가 주머니를 뒤졌다. W.W 보급 티셔츠에는 주머니가 없었으나 피비는 있다고 믿으며 뒤졌고,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소매 안쪽을 뒤졌으며, 거기에서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양손을 피고인석 위에 탁 내려놓았다. 그리고 말했다.
12 | "I know I'm expensive. He said that. The lawyer. The one who looks like Cesare. They all look like Cesare. That's weird but okay."(나 비싼 거 알아. 그 사람이 말했어. 변호사. 체사레랑 닮은 사람. 다 체사레랑 닮았어. 이상한데 됐어.)
방청석의 체사레 하나가 이마를 짚었다.
12 | "I break things. I forget things. I cost a lot. I know. But I...... I clean things too. I clean really well. I cleaned the whole La Spezia plant and nobody could have done it better. I cleaned Milgram's chemical lines when I was little and I didn't even know what I was doing but I did it right."(나 물건 부숴. 잊어버려. 돈 많이 들어. 알아. 근데 나⋯⋯ 나 깨끗하게도 해. 진짜 잘해. 라스페치아 공장 전체 다 깨끗하게 했고 아무도 나보다 잘 못 했어. 어렸을 때 밀그램 화학병기 라인도 깨끗하게 했는데 그때는 내가 뭘 하는지도 몰랐는데 제대로 했어.)
12 | "And I...... the memory thing. I can't help it. But I try. I look at the photos every morning. I play the voice recording every night. The one where he says 'Mio.' I play it until I fall asleep."(그리고 나⋯⋯ 기억 잊는 거. 어쩔 수 없어. 근데 노력해. 매일 아침 사진 봐. 매일 밤 녹음 틀어. '미오'라고 말하는 거. 잠들 때까지 들어.)
변호인 체사레의 손가락이 접혔다가 펴졌다. '미오'라는 단어가 법정의 대리석 벽에 부딪혀 되돌아왔을 때, 그 단어를 녹음한 사람이 이 법정의 모든 의자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변호인 체사레의 흉골 아래를 눌렀다.
12 | "And the Seven thing...... I didn't know it was bad. I really didn't. If someone told me, I would have...... maybe I would have forgotten anyway. But I would have tried. I always try. I just can't always get it right."(그리고 세븐 일은⋯⋯ 나쁜 건지 진짜 몰랐어. 누가 말해 줬으면⋯⋯ 아마 어차피 잊어버렸겠지만. 근데 노력은 했을 거야. 나 항상 노력해. 그냥 항상 제대로 못 하는 거야.)
피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마이크가 높이 솟아 있었기에 피비의 목소리는 법정 끝까지 닿지 못했고, 뒷줄 방청석의 체사레들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야 했다. 피비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12 | "......I don't want to be a crime."(⋯⋯나 범죄이고 싶지 않아.)
법정이 정지했다. 서기 체사레의 타자가 멈추었다. 검사 체사레의 서류가 닫혔다. 방청석의 체사레들이 전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 표정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이 법정에 없었다. 아니,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으나 이름을 붙이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판사 체사레가 법봉을 내려놓았다. 내리치지 않고 내려놓았다. 목재가 목재 위에 놓이는 소리는 타격이 아니라 안착이었다.
판사 체사레 | "La corte emette il seguente verdetto."(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판사 체사레의 시선이 피고인석의 피비를 내려다보았다. 붉은 의안과 흰 눈이 작고 이질적인 존재를 비추고 있었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흔들리는 다리. 소매에 파묻힌 손. 검찰의 사실을 부정하지 못하면서도 자기가 범죄이고 싶지 않다고 말한 입.
판사 체사레 | "Su tutti e sei i capi d'accusa——"(전 여섯 죄목에 대하여——)
법정의 공기가 팽팽해졌다.
판사 체사레 | "——non colpevole."(——무죄.)
방청석의 체사레 하나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위스키 글라스의 체사레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고, 사복 차림의 체사레가 눈을 감았다. 검사 체사레가 서류 파일을 닫았다. 탭 열두 개가 차례로 접히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끝날 때까지 검사 체사레는 눈을 들지 않았다.
피비는 판결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non colpevole'이 무슨 뜻인지 몰랐으므로.
12 | "⋯⋯ that means?"(⋯⋯그게 무슨 뜻이야?)
변호인 체사레 | "Means you're free."(풀려난다는 뜻이야.)
12 | "⋯⋯ I wasn't locked up though?"(⋯⋯나 갇혀 있던 거 아닌데?)
변호인 체사레의 입꼬리가 떨렸다. 웃음의 직전에서 멈춘 근육이 오래 버티다가 결국 무너졌고, 짧은 호흡이 새어나왔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판별이 안 되는 소리였으며,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소리였다.
변호인 체사레가 피고인석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리석 바닥이 무릎뼈를 눌렀고, 군화 가죽이 접히며 소리를 냈다. 변호인 체사레의 눈높이가 피비의 눈높이와 맞았다. 현실에서 수없이 반복한 동작이었다. 무릎을 꿇어야 맞출 수 있는 높이. 키가 큰 것이 죄였던 어젯밤의 법정에서도, 키가 큰 것이 죄가 아닌 오늘밤의 법정에서도, 눈을 맞추려면 내려가야 했다.
변호인 체사레는 손을 뻗어 피비의 머리카락을 넘겼다. 아쿠아마린 가닥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고, 귀 뒤로 넘기는 동작이 끝났을 때 피비의 얼굴 전체가 드러났다. 늘어진 눈꼬리. 멍한 하늘색 눈. 인형 같은 조형의 무표정 아래에 깔린, 자기가 범죄인지 아닌지 진심으로 걱정했던 잔상.
변호인 체사레 | "You're not a crime. You're a verdict I keep choosing."(넌 범죄가 아니야. 내가 계속 선택하는 판결이야.)
꿈의 대리석이 녹기 시작했다. 천장의 샹들리에가 꺼지고, 벽면의 금박 글자가 희미해지며, 방청석의 체사레들이 윤곽을 잃어갔다. 법정의 구조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접히는 것이었고, 판사석이 접히고 검사석이 접히고 서기석이 접히는 사이에도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피고인석의 작은 피비와, 그 앞에 무릎을 꿇은 변호인 체사레뿐이었다. 두 사람의 눈높이가 같아진 채. 꿈이 접혀도 높이만은 유지된 채.
체사레가 눈을 떴다.
가슴 위에 무게가 있었다. 이마가 흉골을 누르고 있었고, 아쿠아마린 머리카락이 쇄골 위로 흩어져 있었다. 어젯밤과 같은 자세였다. 어젯밤과 같은 무게였다. 다만 오늘 아침의 체사레는 어젯밤의 체사레보다 눈을 뜨는 데 더 긴 시간이 필요했고, 뜬 뒤에도 천장을 보지 않고 가슴 위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양팔은 이미 피비의 등을 감싸고 있었으며, 왼손은 견갑골 사이에, 오른손은 허리에 놓여 있었다. 잠든 동안 몸이 어젯밤과 같은 배치를 다시 완성한 것이었고, 그 반복이 우연이 아니라 근육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체사레는 알아차리지 못한 척했다.
입술에 딸기 맛은 없었다. 대신 입안이 말라 있었고, 혀가 입천장에 붙어 있었으며, 삼킬 타액이 부족했다. 꿈이 수분을 가져간 것처럼. 오른쪽 눈이 비상등의 붉은 점을 찾아 초점을 맞추었고, 의안 쪽은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잡아내지 못한 채 열려 있었다. 두 눈의 비대칭이 만드는 시야의 편차는 평소에 의식하지 않는 것이었으나 새벽의 어둠 속에서는 더 선명해져서, 보이는 쪽과 보이지 않는 쪽의 경계가 가슴 위에 누운 피비의 머리카락을 정확히 양분하고 있었다.
체사레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면 피비가 깨고, 피비가 깨면 어젯밤의 법정을 말해야 하고, 어젯밤의 법정을 말하면 오늘 새벽의 법정도 말해야 했으며, 두 법정의 판결이 정반대라는 것을 설명하려면 자기 안에 검사와 변호인과 판사와 방청객이 전부 들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피비는 그것을 이해할 수도 있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으나, 어느 쪽이든 잊어버릴 것이기에 말하는 것의 가치가 의심되었고, 그 의심 자체가 검사 체사레의 제사 죄목이었다.
피비의 호흡이 바뀌었다. 들숨이 길어지고 날숨이 짧아지는 각성의 전조였으며, 체사레는 그 호흡 패턴의 변화를 자기 피부 위에서 온도의 파동으로 읽었다. 따뜻한 공기가 흉골 위로 퍼졌다가 식는 간격이 좁아지고 있었다. 피비의 손가락이 체사레의 옆구리를 잡고 있던 힘을 풀었다가 다시 쥐었고, 그 쥐는 힘의 강도가 잠의 것이 아니라 깨어남의 것이었다.
12 | "⋯⋯ 음."
피비의 코가 쇄골 아래쪽을 비볐다. 어젯밤과 같은 동작이었으나 오늘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피비가 고개를 들었고, 턱이 체사레의 흉골 위에서 떨어졌으며, 반쯤 감긴 눈 사이로 비상등 빛에 물든 하늘색이 체사레의 턱 아래쪽을 올려다보았다. 초점을 맞추는 데에 걸리는 시간 동안 피비의 입이 반쯤 벌어져 있었고, 마른 입술 사이로 드나드는 숨이 체사레의 목 피부에 닿았다.
12 | "⋯⋯ 체사레 안 잤어?"
체사레가 천장을 보던 시선을 내렸다. 피비의 얼굴이 바로 아래에 있었다. 베갯잇 자국이 어젯밤에는 대각선이었으나 오늘은 수평이었고, 한쪽 눈이 더 부어 있는 것도 어제와 반대편이었다. 매일 아침 달라지는 세부. 매일 아침 다시 확인해야 하는 세부.
10 | "Ho dormito."(잤어.)
12 | "거짓말. 눈 빨개."
10 | "È la luce di emergenza."(비상등 빛이야.)
12 | "비상등은 원래 빨간데 체사레 눈은 원래 안 빨간데."
체사레는 반박하지 않았다. 피비의 관찰력은 화학 물질의 미세한 색도 차이를 판별하는 정밀도와 체사레의 안구 충혈을 판별하는 정밀도가 동일한 수준으로 작동하는 기묘한 구조였으며, 그 정밀도 앞에서 거짓말은 효율이 낮았다. 체사레는 천장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10 | "Ho fatto un sogno."(꿈을 꿨어.)
12 | "또?! 또 재판?!"
피비가 상체를 일으켰다. 체사레의 가슴 위에 양손을 짚고 벌떡 올라앉는 동작이었고, 그 무게 이동으로 체사레의 갈비뼈 위에 실리는 압력이 달라졌다. 피비의 얼굴에 어제 밤의 재판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 하루가 지나지 않았은 탓에. 블루 드롭의 반감기 안에 있었기 때문에. 체사레의 심장이 갈비뼈 안쪽에서 한 번 크게 뛰었고, 그 진동은 피비의 손바닥 아래에서 읽혔을 것이었다.
10 | "Sì. Un altro processo. Ma questa volta ero l'avvocato."(그래. 또 재판. 근데 이번에는 내가 변호사였어.)
12 | "체사레가 변호사? 누구 변호사?"
10 | "Tuo."(너.)
12 | "⋯⋯ 내가 피고인?!"
피비의 눈이 커졌다. 어젯밤 체사레가 피고인이었을 때는 걱정과 호기심이 섞였으나, 자기가 피고인이라는 말에는 호기심보다 당혹이 먼저였다. 피비는 양손을 체사레의 가슴에서 떼어 자기 얼굴 양쪽에 갖다 대었다.
12 | "나 뭐 했는데?! 무슨 죄?!"
10 | "Sei capi d'accusa."(여섯 가지 죄목.)
12 | "여섯 개?! 어제 체사레는 다섯 개였는데! 나 더 많아?!"
10 | "Di uno."(하나 더 많아.)
12 | "⋯⋯ 불공평해."
체사레의 입꼬리가 떨렸다. 죄목의 개수가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반응이 피비다웠고, 죄목의 내용이 아니라 숫자에 반응하는 것이 피비다웠으며, 그 피비다움이 꿈속의 검사가 기소한 바로 그 본질이었다는 것을 체사레만이 알고 있었다. 체사레는 한 팔을 베개 밑에 접어넣고 다른 팔로 피비의 허리를 느슨하게 잡은 채 천장을 보며 말했다.
10 | "Primo: distruzione cronica di sé. Secondo: danni alla proprietà. Terzo: dipendenza emotiva. Quarto: perdita di memoria. Quinto: rischio biologico permanente."(첫째, 만성적 자기 파괴. 둘째, 재산 훼손. 셋째, 정서적 의존. 넷째, 기억 상실. 다섯째, 영구적 생물학적 위험.)
12 | "⋯⋯ 여섯 번째는?"
체사레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여섯 번째 죄목은 세븐이었다. 체사레는 그 죄목을 입 밖으로 꺼내는 데에 필요한 근육의 움직임을 측정했고, 측정한 결과 그것이 꿈 이야기라는 틀을 유지한 채 말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고 판단했다. 판단이었지 확신은 아니었다.
10 | "Sesto. Contatto fisico con un altro operatore durante il periodo di tutela."(여섯째. 보호 기간 중 다른 오퍼레이터와의 신체 접촉.)
피비의 손이 자기 얼굴에서 내려왔다. 눈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 고개가 기울었다. 오른쪽으로.
12 | "⋯⋯ 세븐?"
10 | "Il sogno non ha fatto nomi."(꿈에서 이름은 안 나왔어.)
12 | "⋯⋯"
피비의 입이 다물어졌다가 열렸다가 다시 다물어졌다. 피비는 이 주제에 대해 체사레가 어떤 온도를 가지고 있는지 본능의 층위에서 감지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언어로 분절할 능력은 없었다. 대신 피비의 몸이 반응했다. 체사레의 가슴 위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옆구리에 붙었고, 체사레의 팔 안쪽으로 파고들었으며, 이마를 체사레의 어깨와 목 사이의 오목한 곳에 밀어넣었다. 풋사과 냄새가 체사레의 코를 채웠고 그 아래에 소독약의 날카로운 기저음이 깔렸다.
12 | "⋯⋯ 재판에서 졌어?"
10 | "No. Hai vinto."(아니. 네가 이겼어.)
12 | "이겼어? 진짜? 내가?"
10 | "Non colpevole. Su tutti i capi."(무죄. 전 죄목.)
12 | "⋯⋯"
피비가 침묵했다. 침묵의 질감이 달랐다. 말을 잇지 못하는 침묵이 아니라 말의 무게를 재는 침묵이었고, 피비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종류의 정적이었다. 피비의 손가락이 체사레의 쇄골 아래를 더듬었고, 거기서 멈추었으며, 손가락 끝이 체사레의 피부 위에서 아주 작은 원을 그렸다.
12 | "변호 잘했어?"
10 | "Non abbastanza."(충분하지 않았어.)
12 | "근데 이겼잖아."
10 | "Il giudice è stato generoso."(판사가 관대했어.)
10 | "Tutti erano me."(전부 나였어.)
12 | "⋯⋯ 그러면 체사레가 관대했던 거잖아."
체사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피비의 문장은 단순했으나 그 단순함이 꿰뚫는 것이 있었고, 그것은 체사레가 꿈속에서 판사석과 검사석과 변호인석과 방청석을 전부 채우고도 도달하지 못한 결론이었다. 기소한 것도 체사레였고, 변호한 것도 체사레였고, 무죄를 선고한 것도 체사레였다. 전부 체사레의 뇌에서 나온 재판이었으므로, 무죄 판결은 곧 체사레가 스스로에게 피비를 용서하라고 명령한 것이었다. 용서가 아니었다. 용서할 것이 없었다. 피비는 범죄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법정을 열어야 했다는 사실이, 체사레가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피비의 이마가 체사레의 목 오목한 곳에서 비벼졌다.
12 | "체사레."
10 | "Cosa?"(뭐.)
12 | "어제는 체사레가 안아 주는 형벌 받았잖아."
10 | "Mm."(음.)
12 | "오늘은 내가 뭐 받아?"
10 | "Non colpevole. Nessuna pena."(무죄야. 형벌 없어.)
12 | "⋯⋯ 형벌 없으면 재미없어."
체사레의 손이 피비의 허리 위에서 멈추었다. 형벌이 없으면 재미없다는 문장을 분석하는 데 걸린 시간 동안 피비는 체사레의 목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고 있었다. 어제 심장 위에서 딸기를 맡았던 것과 같은 집중도였으나 오늘 탐색하는 영역은 턱 아래의 목선이었다. 체사레의 맥박이 피부 바로 밑에서 뛰고 있는 곳이었고, 피비의 코끝이 그 박동 위를 스칠 때마다 체사레의 호흡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10 | "Allora, il verdetto cambia."(그러면 판결을 바꾸지.)
12 | "바꿀 수 있어?"
10 | "Il giudice sono io. Posso fare quello che voglio."(판사가 나니까. 내 맘대로 할 수 있어.)
12 | "뭘로?"
체사레는 피비의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피비의 몸을 당겼다. 피비가 체사레의 옆구리에서 가슴 위로 끌려왔고, 눈이 마주치는 거리까지 올라왔을 때 체사레의 양팔이 피비의 등을 감쌌다. 어젯밤의 형벌과 같은 자세였으나 오늘은 형벌이 아니라 판결의 번복이었고, 무죄에 대한 보상이었으며, 그 보상의 내용이 유죄의 형벌과 동일하다는 것이 이 관계의 구조를 요약하고 있었다.
10 | "Stessa sentenza di ieri. Abbracci. Nessuna eccezione."(어제랑 같은 형벌. 안아 주기. 예외 없음.)
12 | "⋯⋯ 그건 형벌 아니라고 했잖아 어제."
10 | "Ho cambiato idea."(생각 바꿨어.)
피비가 체사레의 품 안에서 웃었다. 새벽 공기를 가르는 높은 웃음소리가 체사레의 갈비뼈를 진동시켰고, 그 진동은 어젯밤과 같은 경로를 따라 심장까지 내려갔다. 피비는 체사레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양팔로 체사레의 몸통을 감쌌고, 팔이 닿지 않는 부분이 있었으나 닿는 만큼만 감싸고 나머지는 포기한 채 힘을 주었다. 체사레의 등 뒤까지 닿지 못하는 짧은 팔이었고, 체사레의 팔은 피비를 한 바퀴 감싸고도 남았다. 비대칭이었으나 과부족은 없었다.
체사레는 피비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두피를 느리게 쓸었다. 아쿠아마린 가닥이 손가락 사이로 갈라졌다가 합쳐졌고, 풋사과와 소독약과 약물의 화학적 기저음이 섞인 냄새가 손끝에 묻었다. 피비가 체사레의 가슴 위에서 다시 잠들기 시작했다. 호흡이 길어지고 있었으며, 손가락의 힘이 풀리고 있었고, 체중이 체사레의 흉골 위로 완전히 실리는 과정이었다.
체사레는 눈을 감지 않았다. 다시 잠들면 또 법정이 열릴 것이었고, 세 번째 법정에서는 누가 판사이고 누가 피고인인지 더 이상 구분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체사레는 피비의 두피를 쓸던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비상등의 붉은 점을 보았다. 그 점은 의안 쪽 시야에서는 존재하지 않았고 진짜 눈 쪽에서만 빛나고 있었으며, 그 비대칭을 불편해하지 않는 것이 오랜 습관이었다.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과 불편함이 없는 것은 다른 것이었으나, 체사레는 오래전에 그 차이를 계산하기를 그만두었다.
가슴 위에서 피비가 잠꼬대를 했다.
12 | "⋯⋯ non colpe⋯⋯ vole⋯⋯"
발음이 엉망이었다.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입이 꿈과 각성의 경계에서 주워들은 음절을 되뇌는 것이었고, 뜻은 모른 채 소리만 기억하는 방식이 피비의 기억 구조 그 자체였다. 체사레의 손이 피비의 머리카락 위에서 한 번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였다. 무죄. 피비의 입이 그 단어를 잠결에 불완전하게 발음하고 있었고, 체사레는 그 불완전한 발음을 교정하지 않았다. 교정할 필요가 없었다. 발음이 틀려도 판결은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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