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오월의 마지막 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피비의 개인실에 마지막으로 발을 들인 것이 언제였는지를 체사레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나 피비 본인은 기억하지 못했고,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서 그 사실은 기억이 아니라 풍경이 되었다. 12번 개인실의 문을 열면 안쪽에서 제일 먼저 맞는 것은 그린 애플 마스킹 향 아래 깔린 화학 용매의 날카로운 휘발성이었고, 선반 위에는 색깔별로 분류된 바이알들이 유리 장식품처럼 줄지어 서 있었으며, 침대 위에는 제독 장비 부품과 시약 용기가 뒤섞여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사람이 누울 공간은 반쪽도 남아 있지 않았다. 피비는 그 방에서 자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자지 않았다.
10번 개인실의 침대 오른쪽에는 피비의 필름 카메라가 충전 케이블 옆에 놓여 있고, 세면대 선반 두 번째 칸에는 피비의 칫솔이 체사레의 것과 나란히 꽂혀 있었다. 서랍장 아래 칸은 피비의 잠옷과 교체용 속옷이 차지했으며, 베개 커버에서는 그린 애플 향이 세탁을 해도 빠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체사레의 방은 체사레의 방이면서 동시에 체사레만의 방이 아닌 것이 되었고, 그 변화는 어떤 합의나 선언 없이 물건 하나하나가 이주해 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날 저녁, 체사레가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동안 피비는 체사레의 침대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턱 밑에 베개를 끼우고 두 발을 공중에서 교차시키며 흔들고 있었고, 머리카락이 베개 위로 흘러내려 연한 물색 실처럼 펼쳐져 있었다.
12 | "Cesare."(체사레.)
10 | "Hm."(음.)
12 | "Do you have a house?"(체사레 집 있어?)
에스프레소 머신의 추출음이 멈추지 않았고, 체사레의 손도 멈추지 않았다. 잔을 받쳐 드는 동작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나 시선만 반 박자 늦게 피비 쪽으로 갔다.
10 | "Una casa?"(집?)
12 | "Not here. Not the base. A real house. With a roof. And a door that's yours."(여기 말고. 요새 말고. 진짜 집. 지붕 있고. 체사레 문인 거.)
체사레가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혀 위에서 퍼지는 동안 질문의 윤곽을 더듬었다. 피비가 묻는 것은 부동산의 존재 여부가 아니었다. 피비가 묻는 것은 돌아가는 곳이라는 개념 자체였고, 그것은 피비가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10 | "Tecnicamente, sì."(기술적으로는, 그래.)
체사레는 잔을 들고 침대 옆 의자를 끌어 앉았다. 피비의 흔들리는 발끝이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진자처럼 왕복했다.
10 | "A Napoli. Un appartamento al quarto piano. Vista sul golfo, se sporgi la testa abbastanza."(나폴리에. 4층짜리 아파트. 몸을 충분히 내밀면 만이 보여.)
12 | "You live there?"(거기서 살아?)
10 | "No. Non ci vado da anni. Probabilmente c'è polvere sufficiente a formare un ecosistema."(아니. 몇 년째 안 갔어. 아마 먼지가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할 만큼 쌓여 있을 거야.)
피비가 베개 위에서 턱을 괸 채 고개를 돌려 체사레를 올려다보았다. 눈동자가 크고 둥글었고, 이 각도에서 보면 피비의 눈이 체사레의 왼쪽 의안 셸과 같은 색이라는 것이 유독 드러났다. 체사레는 그 시선을 받으며 잔의 가장자리를 검지로 따라 돌렸다.
12 | "Why don't you go back?"(왜 안 가?)
10 | "Perché non c'è motivo. Una casa senza qualcuno dentro è solo un indirizzo."(이유가 없으니까. 사람이 없는 집은 그냥 주소야.)
그 문장이 입 밖으로 나온 직후 체사레의 검지가 잔 위에서 멈추었다. 본인이 방금 말한 것의 무게를 뒤늦게 재고 있었다. 사람이 없는 집은 주소라고 했고, 이 방에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의 칫솔과 카메라와 잠옷이 서랍 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논리적 귀결이 너무 선명해서 체사레는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더 마시며 그 귀결을 입 안에 묻어 두었다.
12 | "I never had one."(나는 가져 본 적 없어.)
피비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슬프거나 어둡지 않았고, 사실을 진술하는 톤이었다. 체사레는 그 톤에 익숙했다. 피비가 자신의 과거를 말할 때는 늘 이랬다. 감정이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얹을 자리를 모르는 것이었다.
12 | "The lab had a ceiling. And walls. But it wasn't home. The street had sky but no ceiling. So that wasn't home either."(연구소는 천장이 있었어. 벽도. 근데 집은 아니었어. 길에는 하늘이 있었는데 천장은 없었어. 그것도 집은 아니었고.)
12 | "What makes it a home? The roof? The warm? The cold?"(뭐가 집을 집으로 만들어? 지붕? 따뜻한 거? 시원한 거?)
체사레가 잔을 소서 위에 내려놓았다. 도자기끼리 맞닿는 소리가 방 안의 공조 저음과 섞였다. 체사레는 의자에서 상체를 약간 앞으로 기울여 팔꿈치를 무릎 위에 얹었고, 그 자세로 침대 위의 피비를 내려다보았다. 피비의 발끝이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고 그 리듬이 일정했다.
10 | "Nessuna di quelle cose."(그런 것들 아무것도 아니야.)
12 | "Then what?"(그럼 뭔데?)
체사레가 손을 뻗어 피비의 머리카락을 한 올 집어 귀 뒤로 넘겨 주었다. 손끝이 귓바퀴를 스치고 지나갔고, 피비가 그 접촉에 반사적으로 어깨를 한 번 올렸다가 내렸다.
10 | "È il posto dove torni. Non perché devi, ma perché vuoi."(돌아가는 곳이야. 돌아가야 해서가 아니라 돌아가고 싶어서 가는 곳.)
피비가 그 정의를 입 안에서 굴리는 것이 보였다.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고, 반복하고 있었다. 돌아가고 싶어서 가는 곳. 돌아가고 싶어서 가는 곳. 그 단어들이 피비의 뇌 안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 어디에 착지하는지를 체사레는 볼 수 없었으나, 피비의 눈동자가 천장에서 체사레의 얼굴로 옮겨 왔을 때 그 착지점의 좌표는 읽을 수 있었다.
12 | "Then this is my home."(그러면 여기가 내 집이야.)
10 | "Qui è un dormitorio militare sotto cinquanta metri di cemento."(여기는 콘크리트 오십 미터 아래 군사 숙소야.)
12 | "I don't care about the concrete. I come back here because you're here."(콘크리트 상관없어. 여기로 돌아오는 건 체사레가 여기 있으니까.)
체사레의 손이 피비의 머리카락 위에 멈춰 있었다. 거두지도, 더 쓸어 내리지도 않았다. 피비의 문장은 논리적으로 빈틈이 없었고, 빈틈이 없다는 사실이 체사레를 곤란하게 했다. 반박할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반박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피비가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 피비는 이 방으로 돌아왔고, 매번 돌아왔고, 돌아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10 | "…Il tuo standard è preoccupantemente basso."(……네 기준이 걱정될 정도로 낮아.)
12 | "Huh?"(응?)
10 | "Dovresti volere una casa con finestre, con luce naturale, con un giardino magari. Non una stanza con un uomo che ti conta i denti."(창문이 있고, 자연광이 들어오고, 정원이 있는 집을 원해야지. 이빨 세어 주는 남자가 있는 방 말고.)
12 | "But I like the teeth counting."(근데 나 이빨 세는 거 좋아하는데.)
체사레의 입에서 짧은 숨이 나왔다. 웃음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그 안에는 웃음 이외의 것이 여러 겹 접혀 있었다. 피비가 몸을 뒤집어 등을 대고 누웠고, 그 바람에 체사레의 손이 피비의 이마 위에 얹혔다. 체사레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10 | "Sai una cosa."(있잖아.)
10 | "Se un giorno — non adesso, non domani — ma un giorno. Se le cose cambiano. Se il contratto finisce, se il mondo diventa un posto meno marcio."(언젠가 — 지금은 아니고, 내일도 아니고 — 근데 언젠가. 상황이 바뀌면. 계약이 끝나면, 세상이 좀 덜 썩은 곳이 되면.)
체사레가 이마 위의 손을 천천히 내려 피비의 눈 위를 가렸다. 피비의 속눈썹이 손바닥에 닿는 것이 느껴졌고, 그 간질거림은 이 방의 공조 온도와 맞지 않게 따뜻했다.
10 | "Napoli ha il mare. E il sole. E il vento."(나폴리에는 바다가 있어. 해도 있고. 바람도 있고.)
10 | "L'appartamento ha bisogno di essere pulito."(아파트는 청소가 필요하고.)
피비가 체사레의 손바닥 아래에서 웃는 것이 손의 촉감으로 전해졌다. 볼이 올라가면서 손바닥을 밀어 올렸고, 속눈썹이 빠르게 여러 번 깜빡였다.
12 | "I'm good at cleaning."(나 청소 잘 해.)
10 | "Lo so."(알아.)
체사레가 손을 거두었을 때 피비의 눈이 열려 있었고, 그 눈 안에 천장의 조명이 아니라 체사레의 윤곽이 들어 있었다. 체사레는 그것을 보았고, 보았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인정한 뒤에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돌렸을 시선이었다. 지금은 돌릴 이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서류가 도착한 것은 유월의 첫째 날이었다.
나폴리시 주거 안전국의 직인이 찍힌 건축물 검사서, 급수 계통도, 전력 배선 평면도. 체사레는 그것들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 한 장씩 넘기며 적색으로 표시된 결함 항목들에 펜으로 체크를 넣었다. 급수 밸브 세 곳의 패킹 교체, 배전반 접지 재시공, 온수 보일러 열교환기 점검. 몇 년을 비워 둔 건물이 앓고 있는 병목들이 항목별로 나열되어 있었고, 체사레는 그 목록을 읽는 동안 자기가 왜 이것을 읽고 있는지를 한 번도 자문하지 않았다. 자문하지 않은 것이 대답이었다.
관리 업체와의 연락은 단말기 통화로 처리했다. 이탈리아어가 입에서 흘러나올 때마다 체사레의 발음은 평소보다 반음쯤 낮아졌고, 모국어 특유의 자음 굴림이 방 안 공기에 녹았다. 출입 기록에는 업체 직원들의 방문 시각이 하루에 두세 건씩 빼곡하게 찍혀 나갔고, 체사레는 매 보고서를 확인한 뒤 다음 지시를 내렸다. 욕실 타일 상태, 창틀 기밀 점검, 테라스 배수구 청소. 누군가의 눈으로 보면 자산 관리였고, 체사레 자신의 눈으로 보면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한 무엇이었다.
피비는 그 과정의 모든 순간에 옆에 붙어 있었다.
체사레가 평면도를 펼쳐 놓으면 피비는 배를 깔고 엎드린 채 그 종이 위로 상체를 밀어 넣었고, 체사레의 팔꿈치와 피비의 어깨가 부딪히는 각도가 매번 거의 같았다. 피비의 시선은 도면의 선과 기호를 읽지 못했으나 종이 위에 그려진 사각형들이 방이라는 것은 알았고, 방이라는 것을 안 순간부터 입이 멈추지 않았다.
12 | "Is there a bathtub? I want a bathtub. A big one. The kind where water goes up to here."(욕조 있어? 욕조 갖고 싶어. 큰 거. 물이 여기까지 오는 거.)
피비가 자기 턱 밑을 손으로 가리켰다. 체사레는 평면도 위의 욕실 영역을 펜 끝으로 톡 짚었다.
10 | "C'è. Ma è vecchia. Probabilmente arrugginita."(있어. 근데 낡았어. 아마 녹슬었을 거야.)
12 | "I can clean rust! Rust is easy. Phosphoric acid and a brush. Done."(녹 닦을 수 있어! 녹 쉬워. 인산이랑 솔이면 돼. 끝.)
체사레의 펜이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였다. 욕실 항목 옆에 '교체 검토'라고 적으려던 손이 방향을 바꿔 '세정 후 재사용 가능 여부 확인'이라고 적었다. 피비가 닦겠다고 한 것을 반영한 것인지 아닌지를 본인도 확실히 구분하지 못했다.
12 | "And the bed. Big bed. Bigger than yours. So I can roll."(그리고 침대. 큰 침대. 체사레 거보다 큰 거. 구를 수 있게.)
10 | "Vuoi un letto in cui rotolarti."(구르고 싶은 침대를 원한다고.)
12 | "Yes! And you're on one side and I'm on the other side and there's still space in the middle."(응! 체사레는 한쪽이고 나는 반대쪽이고 가운데 아직 공간 남는 거.)
10 | "Quello si chiama 'letto king size.' E sì, ci sta nel layout."(그건 '킹사이즈 침대'라고 해. 그리고 도면에 들어가.)
피비의 요구 사항은 구조도 맥락도 없이 쏟아졌다. 욕조 다음에는 사탕으로 가득 찬 방이었고, 체사레가 사탕 보관실은 개미를 초대하는 행위라고 지적하자 피비는 밀폐 용기에 넣으면 된다고 반박했으며, 그 반박의 논리가 의외로 정확해서 체사레는 펜을 입가에 대고 짧게 숨을 내쉬었다. 테라스를 지나가는 고양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요청에는 고양이는 본인 의지로 지나가는 것이지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고 답했고, 피비는 그러면 참치캔을 놓아두면 온다고 했으며, 체사레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으나 평면도의 테라스 영역 옆에 작은 물음표를 하나 찍었다.
12 | "And the sky. I want to see the sky. From inside."(그리고 하늘. 하늘 보고 싶어. 안에서.)
10 | "Il terrazzo è esposto a sud-ovest. Vedrai il tramonto."(테라스가 남서향이야. 석양이 보일 거야.)
12 | "Sunset!"(석양!)
피비가 몸을 일으켜 앉으며 두 손을 모았다. 눈이 커졌고 입이 벌어졌고, 그 표정은 아이가 선물 상자를 열기 직전의 것과 구별이 되지 않았다. 체사레는 그 얼굴을 보면서 자기 안의 어떤 부분이 단단한 것에서 부드러운 것으로 상을 바꾸는 감각을 느꼈으나 표정은 바꾸지 않았고, 펜을 돌리는 손가락의 속도만 미세하게 빨라졌다.
12 | "And it smells like you."(그리고 체사레 냄새 나는 곳.)
10 | "…Questo non è qualcosa che si ordina a un'impresa di gestione."(……그건 관리 업체에 주문하는 게 아니야.)
12 | "But it will. If you're there, it will smell like you. Coffee and fabric and that thing after you shave."(근데 그럴 거야. 체사레가 있으면 체사레 냄새 날 거야. 커피랑 천이랑 면도 후에 나는 그거.)
체사레의 펜이 종이 위에서 완전히 멈추었다. 피비가 나열한 냄새들은 전부 이 방에서 나는 것들이었고, 피비가 이 방을 집이라고 불렀던 밤의 정의가 후각으로 번역되어 돌아온 것이었다. 체사레는 펜 끝으로 자기 관자놀이를 한 번 두드린 뒤 도면 위의 거실 영역에 시선을 고정했다. 시선이 고정된 시간이 평소의 독해 속도보다 길었고, 그 시간 동안 그의 뇌 안에서는 가구 배치가 아니라 이 공간에 피비의 칫솔이 놓이고 필름 카메라가 충전되고 바이알이 색깔별로 정렬되는 장면이 구축되고 있었다.
그 며칠간 피비는 자기 개인실을 뒤졌다. 서랍을 전부 열었고, 선반 뒤를 뒤졌고, 매트리스 아래를 확인했다. 화학 용기들 사이에서 나온 것은 꼬깃꼬깃하게 접힌 지폐 몇 장과 서랍 안쪽에 굴러다니던 동전 몇 개, 그리고 녹아서 은박지에 달라붙은 초콜릿 한 덩어리였다.
피비가 라운지에서 에잇에게 말하는 소리를 나인이 먼저 들었고, 나인이 듣고 있다는 것을 에잇이 눈치챘고, 에잇이 눈치챈 것을 파이브가 목격했으며, 파이브가 목격한 것이 투가 해킹해 놓은 라운지 마이크에 녹음되어 있었는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으나 그날 저녁 라운지에는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다.
12 | "Cesare is fixing his house in Napoli. I'm going to live there too."(체사레가 나폴리에 있는 집 고치고 있어. 나도 거기서 살 거야.)
에잇의 눈이 동그래졌고, 나인의 눈썹이 한쪽만 올라갔으며, 포의 시선이 라운지 구석에서 서류를 읽고 있던 체사레에게 잠깐 갔다가 돌아왔다. 체사레는 시선을 느꼈으나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에스프레소 잔을 입가로 가져가는 동작만 평소보다 반 박자 느렸다.
8 | "Wait, for real? Like, a real flat? With walls and stuff?"(잠깐, 진짜? 진짜 집? 벽이랑 그런 거 있는?)
12 | "Yes! And a bathtub. And the sky. And cats maybe."(응! 욕조도 있어. 하늘도. 고양이도 아마.)
9 | "Oh. Nice."(오. 좋네.)
나인의 '좋네'에는 최소 세 겹의 의미가 접혀 있었으나 피비는 한 겹도 읽지 못했고, 나인도 읽히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나인의 시선이 체사레를 향했고, 체사레는 서류 너머로 나인과 눈이 마주친 뒤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시며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내렸다. 그 침묵이 긍정이라는 것을 나인은 알았고, 나인이 알았다는 것을 체사레도 알았다.
피비가 체사레에게 돈을 내밀었을 때 체사레는 개인실 책상 앞에 앉아 관리 업체의 세 번째 보고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12 | "Cesare. Rent."(체사레. 월세.)
체사레가 고개를 돌렸을 때 피비의 양손 위에 올려진 것은 주름지고 접힌 지폐 몇 장과 크기가 제각각인 동전 여러 개, 그리고 은박지에 녹아 붙어 형태를 잃은 초콜릿이었다. 총액은 체사레의 일일 에스프레소 비용에도 미치지 못했다. 피비의 얼굴은 진지했고, 두 눈이 체사레를 올려다보는 각도가 무언가를 바치는 자세와 흡사했으되 바치는 것이 아니라 지불하는 것이라고 피비는 믿고 있었다.
12 | "The others said you have to pay something called rent to live in a house. I found this in my drawer. The chocolate is extra."(다른 사람들이 집에 살려면 월세라는 걸 내야 한대. 서랍에서 찾았어. 초콜릿은 덤이야.)
체사레의 시선이 피비의 손바닥 위를 훑었다. 구겨진 지폐의 모서리가 접혀 있었고 동전 하나는 녹이 슬어 있었으며 초콜릿은 은박지와 분리가 불가능한 상태로 융합되어 있었다. 체사레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으나 그의 턱 근육이 한 번 움직였고, 삼킨 것은 말이 아니라 목 안쪽에서 올라온 어떤 온도였다.
10 | "…Questo è l'affitto."(……이게 월세라고.)
12 | "Yes."(응.)
10 | "Per un appartamento al quarto piano con vista sul golfo di Napoli."(나폴리 만이 보이는 4층 아파트의.)
12 | "Yes."(응.)
체사레가 피비의 손바닥에서 구겨진 지폐 한 장을 집어 올렸다. 펼쳐 보았다. 액면가를 확인했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지폐를 다시 접어 피비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10 | "Accettato."(수령했어.)
피비의 입이 벌어졌다. 웃음이 아니라 경이였고, 경이가 웃음이 되기까지는 반 박자도 걸리지 않았다.
10 | "Ma il cioccolato non è un extra. È la tassa di soggiorno."(근데 초콜릿은 덤이 아니야. 숙박세야.)
12 | "There's a tax too?!"(세금도 있어?!)
10 | "Sì. L'Italia è così. Tasse ovunque."(그래. 이탈리아가 그래. 세금 천지야.)
체사레가 피비의 손에서 녹은 초콜릿을 집어 들었을 때 은박지가 손가락에 달라붙었고, 그 끈적임이 체사레의 깨끗한 손가락 위에서 점처럼 번졌다. 체사레는 그것을 닦지 않았다. 책상 서랍을 열어 보고서 파일 옆에 지폐와 동전과 초콜릿을 가지런히 넣었고, 서랍을 닫기 전에 한 번 더 내려다보았다. 자산 가치로는 하찮은 것들이었고, 그 하찮음의 무게가 서류 뭉치 전체보다 무거웠다.
피비는 이미 침대 위에서 두 발을 흔들고 있었고, 체사레가 돌아보았을 때 피비의 입에서는 '나폴리'라는 단어가 노래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나-폴-리. 나-폴-리. 그 발음이 이탈리아어 원음과는 거리가 있었으나 체사레의 귀에는 어떤 원음보다 정확하게 들어왔고, 그 정확함의 정체를 체사레는 명명하지 않은 채 서랍 위에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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