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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10/LOG

10피비|의안

2026. 8. 12. 19:47

화보집의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가 멈춘 것을 10은 즉시 알아차리지 못했다. 보고서의 마지막 문단을 고치는 데 시선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타자를 치는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짧게 멈추고, 다시 움직이고, 또 멈추는 그 사이사이로 피비의 시선이 화보집에서 벗어나 그의 얼굴 위를 더듬기 시작한 것은, 아마 한 30초 전쯤이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왼쪽 눈. 붉은 의안이 박힌 쪽이었다.

피비는 소파 반대편에 다리를 접고 앉은 채, 무릎 위에 펼쳐 놓은 이탈리아 산업디자인 화보집을 더 이상 보지 않았다. 대신 그 연한 파란 눈이 10의 옆얼굴에 고정된 채 아주 천천히 깜빡였다. 멍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관찰하는 얼굴이었다. 화학 물질의 색깔 차이를 가르듯, 그녀의 시선은 10의 오른쪽 눈과 왼쪽 눈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차이를 확인하고 있었다. 오른쪽은 연한 회색으로, 실내 조명을 받으면 거의 투명해 보이는 눈. 왼쪽은 빛의 각도와 무관하게 항상 같은 채도의 붉은색을 유지하는 눈. 유리로 만든 눈동자는 진짜보다 오히려 더 일정하게 빛났다. 그 일정함이 피비의 호기심을 건드린 것이다. 빛나는 건 뭐든 만져 보고 싶은 사람이었으니까.

12 | "눈은 어쩌다가 그랬어?"

말은 불쑥 떨어졌다. 톤은 평평했고, 악의는 물론 배려도 없었다. 순수한 궁금증이 입에서 먼저 나온 것이다. 화보집 위의 손가락이 페이지 모서리를 무의식적으로 접고 있었고, 몸은 이미 10 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더 가까이 보고 싶다는 의사가 자세에 먼저 써져 있었다.

10의 타자가 멈췄다. 키보드 위에 올린 손가락이 마지막 글자를 누른 자세 그대로 굳었다가, 아주 천천히 내려왔다. 그는 화면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반쯤 돌려 피비를 봤다. 왼쪽의 붉은 의안과 오른쪽의 회색 눈이 동시에 그녀를 향했다. 두 눈의 움직임은 같았지만 빛의 질감은 달랐다. 한쪽은 살아 있었고 한쪽은 정밀했다. 피비는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구분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냥 둘 다 반짝거렸다.

방 안의 공기가 잠깐 멎었다. 환기구의 필터 소리만 저음으로 돌았다. 10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웃음이라고 부르기엔 짧고, 반사라고 부르기엔 의식적이었다. 그 종류의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물어보기 전에 표정부터 바꿨다. 미안하다거나, 조심스럽다거나, 혹은 굳이 알고 싶지 않지만 예의상 신경 쓰이니까. 그런 전조가 피비에겐 전혀 없었다. 입천장의 물집을 건드리듯, 바이알의 색을 구분하듯, 단추의 광택을 확인하듯. 그녀는 그저 눈앞에 있는 것을 물었을 뿐이었다.

10 | "Which answer do you want? The short one or the interesting one?"
(어떤 대답을 원해? 짧은 거, 아니면 재밌는 거?)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매끄럽고, 약간의 여유를 남긴 채. 그러나 화면을 끈 것은 평소와 달랐다. 단말기의 조명이 사라지자 방 안이 한 톤 어두워졌고, 그의 얼굴에서 의안의 붉은빛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피비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생각하는 시늉을 했다. 실제로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아니었을 수도 있다. 결론은 빨랐다.

12 | "재밌는 거."

당연한 선택이었다. 10은 한 번 숨을 내쉬며 등을 소파에 더 깊이 밀착시켰다. 천장을 보지 않았다. 대신 피비의 시선을 받은 채 왼눈 아래, 안와骨 가장자리를 검지로 가볍게 짚었다. 뼈의 윤곽을 따라 손끝이 반원을 그렸다. 피비의 시선이 그 손가락을 즉시 따라갔다.

10 | "I was following an order that turned out to be someone else's exit plan. A man I trusted needed a scapegoat, and I was convenient."
(내가 따르던 명령이 알고 보니 다른 놈의 퇴로였어. 내가 신용하던 사람이 희생양이 필요했고, 내가 적당했지.)

설명은 건조했다. 감정을 발라낸 뒤에 뼈대만 남긴 문장이었다. 피비는 그 말의 무게보다 10의 손가락이 안와 가장자리를 짚은 동작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았다. 아니, 둘 다 들어왔을 수도 있다. 다만 그녀의 처리 순서가 보통 사람과 달랐을 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먼저 반응을 꺼냈다.

12 | "아팠어?"

질문은 기가 막히게 단순했다. 경위를 묻는 것도, 분노를 대신해 주는 것도, 위로를 건네는 것도 아니었다. 아팠느냐. 물리적 감각. 피비의 세계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언제나 그것이었다. 10은 내린 손을 무릎 위에 놓으며 입꼬리를 한 번 더 올렸다. 이번에는 조금 더 확실한 곡선이었다. 비꼼이 아니라, 이상하게 말랑한 종류의 무장 해제가 입가에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10 | "Quite a lot, actually."
(꽤 많이.)

인정하는 데 0.3초가 걸렸다. 피비가 아닌 다른 누구 앞이었다면 '별것 아니었어'라거나, 혹은 '그건 이미 끝난 이야기야'라는 포장이 먼저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피비에게 포장은 무의미했다. 그녀는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감각에 닿느냐 안 닿느냐만으로 세계를 분류했다. 아프다는 말은 닿았다. 그래서 그녀의 표정이 바뀌었다. 밝았던 얼굴이 어두워진 것은 아니었다. 대신 눈이 좀 더 커졌다. 입술이 반쯤 열렸다. 아이가 처음 보는 상처를 발견했을 때의 반응과 비슷했다. 두려움이 아니라 '이게 뭐지'에 가까운 확장이었다.

피비는 화보집을 무릎에서 밀어내며 소파 위를 기어서 10 쪽으로 다가왔다. 거리가 한 뼘, 반 뼘 줄었다. 그녀의 손이 올라왔다. 목적지가 분명한 손이었다. 10의 왼쪽 눈 언저리.

12 | "만져 봐도 돼?"

묻는 동시에 이미 손이 거의 닿아 있었다. 질문과 행동 사이에 유예가 거의 없는 사람. 10은 그 손끝이 관자놀이 옆 피부에 닿기 직전에 시선을 내려 피비의 손가락을 봤다. 가늘고, 주삿바늘 자국이 남은 손가락. 약품 냄새가 그 위에 얇게 배어 있었다. 이상하게도 거부감이 오지 않았다. 평소라면 타인의 손이 얼굴에 닿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특히 왼쪽은. 그곳은 잃어버린 쪽이니까. 없는 것의 자리를 만지는 행위에는 대체로 동정이나 호기심이 묻어 있었고, 둘 다 그가 즐기는 종류가 아니었다.

그런데 피비의 손에는 그 어느 쪽도 없었다. 그녀는 단지 빛나는 것을 만져 보고 싶었을 뿐이다. 바이알을 만지듯, 단추를 문지르듯. 의안이 예쁘니까. 그게 전부였다.

10 | "Careful. It doesn't feel anything, but I do."
(조심해. 이건 아무것도 못 느끼지만, 나는 느끼거든.)

허락이었다. 에둘러서, 한 문장의 유예를 덧붙인. 피비의 손가락이 닿았다. 의안이 박힌 왼쪽 눈 바로 아래, 안와 가장자리의 피부. 그녀의 손끝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고, 다만 약간 건조했다. 거기서부터 천천히 올라가 눈꺼풀의 경계, 의안과 피부가 만나는 가장자리를 따라 더듬었다. 진짜 눈이었다면 눈동자가 깜빡였을 감각이었지만, 유리는 깜빡이지 않았다. 피비의 검지가 의안의 표면 위로 아주 가볍게 미끄러졌다. 매끄럽고 둥글고 차가운 촉감. 그녀의 입에서 짧은 감탄이 흘렀다.

12 | "차가워. 예뻐."

두 단어 사이에 논리적 연결은 없었다. 차갑다는 것과 예쁘다는 것은 별개의 감각이었고, 피비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느낀 것을 순서대로 뱉었을 뿐이었다. 10은 그 손끝이 의안 위를 지나가는 감각을 느꼈다. 안구 자체는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했지만, 주변 피부의 신경이 압력과 온도를 읽었다. 미세한 접촉. 작은 원. 그녀의 손가락이 의안의 홍채 부분, 가장 붉은 곳 위에 멈춰 있었다. 들여다보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 속에 고정된 붉은 색소를. 마치 예쁜 시약병 안의 색깔을 감상하듯.

10은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깊지 않게. 다만 평소보다 반 박자 길게. 피비가 만지고 있는 것은 그의 결함이었다. 잃어버린 것의 대체물. 누군가의 배신이 남긴 흔적. 그런데 이 사람은 그것을 예쁘다고 했다. 차갑고 예쁘다고. 바이알이 빛나듯이, 화학 물질의 색이 예쁘듯이, 10의 의안도 그녀에게는 같은 범주의 것이었다. 그 사실이 기묘하게 가슴 안쪽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형용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다만 오래된 상처 위에 아무 생각 없는 손가락이 올라가 있을 때, 그 상처가 아프지 않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한 것 같은. 그런 종류의 느낌이었다.

10 | "You're the first person who's ever called it pretty."
(예쁘다고 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톤 낮았다. 비꼼이 빠져 있었다. 여유의 껍데기도 얇아져 있었다. 그 아래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본인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불쾌함은 아니었다. 피비는 그 말의 의미를 아마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이라는 것이 그에게 어떤 무게인지, 예쁘다는 말이 얼마나 뜻밖이었는지. 그녀는 단지 사실을 말했고, 그 사실이 우연히 누군가의 방어벽을 빗겨 갔다.

12 | "진짜? 이거 엄청 반짝거리는데. 왜 아무도 안 그래?"

의문은 진심이었다. 그녀에게는 빛나는 것이 예쁜 것은 자명한 공리였고, 그것을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이상했다. 10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피비의 손목을 아주 느슨하게 잡았다. 밀어내는 힘이 아니라, 거기에 손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접촉이었다. 그의 엄지가 손목 안쪽의 맥박 위에 잠깐 머물렀다. 피비의 맥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블루 드롭이 정상적으로 순환하고 있다는 증거. 약이 일하고 있고, 독은 눌려 있고, 도파민이 세계를 따뜻하게 덮고 있는 시간. 그래서 이 사람은 이렇게 두려움 없이 남의 상처에 손을 얹을 수 있다. 그걸 아는 것이 10에게는 다소 아렸다.

10 | "Because most people have the decency to pretend they didn't notice."
(대부분의 사람은 못 본 척할 정도의 예의는 있으니까.)

말끝에 매우 옅은 웃음이 묻어 있었다. 비꼼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 향한, 약간 마른 종류의 웃음이었다. 못 본 척하는 예의를 기대하는 데 익숙했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겨 왔는데, 예의도 없고 잔인함도 없이 그냥 만져 보는 손이 와 버린 것이다. 그 손에 대해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붙이면 커질 것 같았다.

피비는 여전히 의안 가장자리를 만지고 있었다. 질리지 않는 것이다. 빛나는 것에 대한 관심이 꺼지지 않는 한, 이 손은 치우지 않으면 저절로 멈추지 않을 터였다. 10은 그녀의 손목을 잡은 채 힘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았다. 그 중간 지대에서, 환기구의 필터 소리가 둘 사이의 침묵을 아주 얇게 메우고 있었다.

 

피비의 손가락 끝이 의안의 매끄러운 표면을 떠나, 그 경계에 맞닿은 아래 눈꺼풀의 피부 위로 아주 느리게 옮겨갔다. 10은 그 움직임을 막지 않았다. 그저 손목을 쥔 채, 자신의 얼굴 위에서 벌어지는 이 작은 탐사를 전부 감각했다. 의안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지만, 그 주변의 신경은 전부 살아 있었다. 손끝의 미세한 압력, 체온의 이동, 건조한 피부가 스치는 소리 없는 마찰. 그 모든 것이 그의 뇌로 곧장 흘러들었다.

손가락은 곧 속눈썹에 닿았다. 진짜 눈썹. 부상을 입지 않은 쪽의 것과 똑같이 자라난, 그러나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유리가 박힌. 피비는 그 속눈썹을 마치 처음 보는 식물의 잎사귀라도 되는 양 검지 끝으로 가만히 쓸어 올렸다. 가볍고, 탄력 있고, 간지러운 감촉. 그녀의 파란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조금 더 커졌다. 별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눈썹이 거기 있었고, 만져보고 싶었고, 그래서 만졌다. 그게 전부였다.

10의 오른쪽 눈꺼풀이 아주 천천히 감겼다 뜨였다.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살아있는 눈이라면 간지러움에 저절로 깜빡였을 것이다. 그러나 왼쪽 눈은 미동도 없었다. 붉은 유리 구슬은 그저 피비의 얼굴을 비출 뿐이었다. 그 비대칭적인 반응이, 지금 이 순간 10의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요약하고 있었다. 반은 느끼고, 반은 느끼지 못한다. 반은 살아있고, 반은 죽어있다. 그리고 그 경계선을, 지금 이 여자가 아무런 두려움 없이 더듬고 있었다.

10 | "What are you looking for now?"
(이번엔 뭘 찾고 있는데.)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평소의 매끄러운 표면 아래, 무언가 다른 결이 만져지는 톤이었다. 피비는 눈썹 끝에서 손가락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시선은 여전히 그의 눈에 고정되어 있었다.

12 | "진짜 같아."

진짜 같다. 그 말은 ‘예쁘다’와는 다른 종류의 충격이었다. 예쁘다는 말은 감상이었지만, 진짜 같다는 말은 판정이었다. 잃어버린 것을 대체한 가짜가, 진짜와 구분되지 않는다는 선언. 10은 입술을 열었다가 도로 닫았다. 무슨 말을 하려 했을까. ‘이건 가짜야’라고 정정하려 했을까. 아니면 ‘그렇게 보여?’라고 되물으려 했을까. 어느 쪽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피비의 손가락이 이번에는 눈썹 뿌리 쪽으로 내려와, 눈꺼풀의 가장 부드러운 살을 아주 가볍게 눌렀다. 그 아래에서 둥근 의안의 형태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그 감촉이 신기한 듯 손끝에 힘을 주었다 뺐다.

12 | "움직여?"

10 | "The other one moves it."
(다른 쪽이 움직여줘.)

오른쪽 눈의 근육과 신경이 왼쪽의 의안을 함께 움직이도록 동조되어 있다는, 지극히 기술적인 설명이었다. 그러나 그 설명이 오가는 동안, 10의 시선은 피비의 손가락에서 그녀의 입술로, 다시 그녀의 파란 눈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이 여자는 모른다. 이 질문들이, 이 접촉들이, 타인의 갑옷 가장 얇은 틈새를 얼마나 정확하게 찔러 들어오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그녀를 무장시켰고, 동시에 그를 무장 해제시켰다.

그의 엄지가 피비의 손목 안쪽을 다시 한번 쓸었다. 맥박이 뛰는 곳. 부드럽고 얇은 피부 아래로 피가 흐르는 감각. 살아있는 것의 증거. 그는 문득 이 손목을 부러뜨리는 것이 얼마나 쉬울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과 동시에, 이 손을 자기 뺨에 더 깊이 묻게 하는 것은 얼마나 더 쉬울지도 생각했다. 두 생각은 종류가 달랐지만, 근원은 같았다. 통제. 그리고 그 통제를 시험해보고 싶은 충동.

피비는 그의 속마음을 알 리 없이, 그저 눈앞의 흥미로운 장난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떼고, 이번에는 그의 오른쪽 눈으로 손을 옮기려 했다. 살아있는 눈. 진짜로 깜빡이고, 진짜로 보고, 진짜로 감정을 비추는 눈.

그 순간, 10이 그녀의 손목을 잡은 손에 아주 미미한 힘을 주었다. 움직임을 막는 힘이었다. 피비의 손이 공중에서 멈칫했다.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10을 올려다보았다. 왜? 라는 질문이 눈에 쓰여 있었다.

10 | "That one's boring. It works."
(그쪽은 지루해. 멀쩡하거든.)

말은 농담처럼 들렸다. 그러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붉은 의안과 회색 눈동자가 똑같은 강도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진짜 눈을, 진짜 감정을, 이토록 무방비하게 더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고장 난 쪽은 괜찮았다. 그건 이미 잃어버린 것이고, 전시품이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살아있는 쪽은 달랐다. 그곳은 아직 그의 영역이었다.

피비는 그 미묘한 거절을 이해했는지 못했는지, 순순히 손을 내렸다. 대신 몸을 더 가까이 기울였다. 둘의 무릎이 맞닿았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왼쪽 눈으로 돌아왔다. 예쁘고, 차갑고, 진짜 같고, 만져도 되는 눈. 그녀는 그것으로 만족한 듯했다.

12 | "이거, 다른 색으로도 바꿀 수 있어?"

질문은 다시 순수한 호기심으로 돌아왔다. 10은 그 변화의 속도에 혀를 내두르고 싶었다. 거절의 기류를 조금이라도 감지하면 즉시 다른 길로 틀어버리는, 생존 본능에 가까운 방향 전환. 아니, 어쩌면 그녀는 거절당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저 ‘아, 저쪽은 재미없구나. 그럼 다시 이쪽으로 가야지.’ 하고 생각했을 뿐일지도.

10 | "I could. If I wanted to look like a traffic light."
(할 수는 있지. 내가 신호등처럼 보이고 싶다면.)

그는 피비의 손목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대신 그 손으로 그녀의 턱을 가볍게 감싸 쥐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게 만드는 각도. 피비는 저항 없이 그 손길을 받았다. 10의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촉촉하고, 부드럽고, 약간의 열감이 있는 살결.

10 | "What color would you recommend?"
(무슨 색을 추천하는데?)

그의 눈이 피비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연한 파란색. 약물 없이는 불안으로 흐려지고, 약물이 돌면 순수한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 그 눈동자의 색을 빼앗아 자신의 텅 빈 눈에 박아 넣으면 어떨까. 그런 비현실적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녀의 가장 빛나는 부분을 가져와, 자신의 가장 어두운 곳에 채워 넣는 상상. 그것은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동시에 지독하게 매혹적이었다.

피비는 그의 질문에 잠시 고민했다. 그녀의 눈이 10의 붉은 눈과, 그의 손가락,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차례로 훑었다. 그리고는 아주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12 | "하늘색. 내 눈색이랑 똑같이."

이유는 단순했다. 자기가 가진 색이니까. 예쁘다고 생각하는 색이니까. 10은 그 대답에 낮은 웃음소리를 냈다. 목 안쪽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진동이 섞인 소리. 그는 피비의 턱을 쥔 채로 상체를 숙였다. 둘의 얼굴 거리가 손가락 한 마디만큼 좁혀졌다. 그의 숨결이 그녀의 뺨에 닿았다.

10 | "So we'd match."
(그럼 우리 둘이 똑같아지겠네.)

소파 등받이의 직선과 두 사람 사이의 거리만이 또렷했다. 피비의 손끝이 눈꺼풀에서 떨어진 뒤에도 아주 잠깐 공기 속에 머문 듯 보였고, 10의 손은 그녀의 턱 아래에서 바로 물러나지 않았다. 회색 눈은 살아 있는 쪽답게 피비의 표정을 읽고 있었고, 붉은 의안은 읽는 흉내조차 없이 매끈하게 빛만 받았다. 환기구에서 넘어오는 일정한 풍압이 종이 가장자리를 들썩였고, 책상 위 꺼 둔 단말기 화면은 검은 유리처럼 방 안 형체를 흐릿하게 비췄다.

피비는 10의 가까워진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그의 마지막 말이 무슨 층위에서 나온 것인지 굳이 파고들지 않았다. 이해 못 한 것이 아니라, 자기식으로 곧장 다른 결론을 낸 쪽에 가까웠다. 하늘색이 자기 눈 색과 같고, 그 색이 10의 눈에 들어가면 둘이 비슷해진다. 그건 좋은 일 같았다. 사람들은 비슷한 걸 좋아하는 것 같았고, 피비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맞춰 가는 방식으로 살아남아 왔다. 다만 그 맞춤이 보통 사람들처럼 세련되지 않았을 뿐이다.

12 | "내가 골라주면 진짜 바꿀 거야?"

그녀는 그렇게 묻고는,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10의 셔츠 단추 둘째 줄을 손톱 끝으로 톡 건드렸다. 습관이었다. 빛나거나 반듯한 것은 그냥 만지게 됐다. 손등의 옅은 멍 자국이 천 위에서 스쳤고, 긴 머리카락 몇 가닥이 앞으로 흘러내려 10의 손목에 닿았다. 그녀의 자세는 여전히 경계가 없었다. 허리를 비틀어 소파 쿠션에 한쪽 무릎을 올린 채,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 얼굴을 구경하는 얼굴. 그 안에는 계산이 없었고, 그래서 오히려 숨길 구석도 없었다.

10은 턱을 괴려던 손을 내려 무릎 위에 얹었다. 피비가 던진 질문은 가벼웠지만, 그 안에는 자기도 모르게 선을 밟는 종류의 친밀함이 들어 있었다. 남의 외형을 바꿀 수 있다고, 바꿔도 된다고 여기는 무구한 오만. 보통은 거슬려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 그녀가 미적거리지 않고 늘 곧장 중앙으로 들어와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우회가 없으니 대비도 늦어진다.

10 | "If your recommendation is awful, I'll blame you for the rest of my life."
(네 취향이 끔찍하면 평생 네 탓할 거야.)

그 말 뒤에 얇은 웃음이 붙었다. 농담처럼 들리게 다듬은, 그러나 완전히 농담만은 아닌 목소리였다. 피비는 그 문장에서 협박보다 허용을 먼저 들었다. 눈이 둥글게 열리더니 바로 싱긋 휘었다. 누군가 자기 의견을 실제로 채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기쁘게 했다. 칭찬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반응이 오면 됐다.

12 | "좋아. 그럼 하늘색 말고, 연두색도 예쁠 것 같아. 되게 독한 시약 같은 거."

그녀는 자기 머리색을 가리키듯 머리카락 끝을 집었다 놓고, 이번에는 허공에 병 모양을 그렸다. 연두빛 액체가 흔들리는 상상까지 손짓에 묻어났다. 좋아하는 것을 설명할 때 피비의 손은 종종 먼저 떠들었다. 작은 손가락뼈가 빠르게 꺾이고 펴졌다. 10은 그 움직임을 보며 문득, 이 사람의 미감은 늘 생존과 중독과 예쁨이 뒤섞인 상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독한 시약과 예쁨을 한 문장에 놓고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 그 균열이 피비를 피비답게 만들었다.

10의 시선이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눈으로 올라왔다. 에메랄드빛과 연한 파랑. 묘하게 차갑고, 묘하게 장난감 같은 조합. 자기 얼굴에 그런 색을 끼워 넣는 상상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또렷했다. 그는 짧게 혀끝으로 윗니 안쪽을 쓸었다. 생각을 정리할 때 나오는, 본인도 자주 의식하지 못하는 버릇이었다.

10 | "Green would make me look unstable."
(연두색은 사람을 좀 위험해 보이게 만들지.)

짧은 정적 뒤에, 그는 피비의 눈을 한번 더 봤다.

10 | "So naturally, you'd choose it."
(그러니 네가 그걸 고를 만도 하고.)

빈정거림은 있었지만 독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질을 설명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피비는 그 말을 흉으로 듣지 않았다. 위험해 보이는 표지판도, 방사능 마크도, 독극물 라벨도 그녀에겐 다 예쁜 쪽에 속했으니까. 그녀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런 거.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몸을 더 기울여 10의 왼쪽 눈을 가까이서 다시 들여다봤다. 거의 코끝이 닿을 거리까지. 그의 의안에 자기 얼굴이 점처럼 비쳤다.

12 | "근데 지금 것도 좋아. 사탕 포장지 안쪽 은박처럼 반짝거려."

비유는 기묘했고 정확했다. 10은 순간 말을 고르지 못했다. 은박지. 값비싼 보석도 아니고, 피가 묻은 전리품도 아니고, 사탕을 싸고 있는 안쪽의 얇은 막. 싸구려 같고, 달고, 아이 같은 이미지. 그런데 그 반짝임만큼은 분명히 닮아 있었다. 피비는 늘 이렇게 사람을 엉뚱한 사물 옆에 세워 둔 채 판단을 끝내 버렸다. 그 방식이 천박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아서, 오히려 더 진실하게 들릴 때가 있었다.

10은 반사적으로 웃었다. 소리를 크게 내지 않은 채 목 안쪽에서만 굴리는 웃음이었다. 그 와중에 오른손이 올라가 피비의 흘러내린 머리카락 한 가닥을 귀 뒤로 넘겼다. 움직임은 짧았고, 손끝은 매끄럽게 지나갔다. 피비는 그 접촉을 당연하게 받았다. 눈을 깜빡이는 속도조차 바뀌지 않았다.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늘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그녀 자신은 그 곤란을 알지 못했다.

10 | "That's an exceptionally cheap compliment."
(아주 값싼 비유로 칭찬하네.)

12 | "그래도 칭찬 맞잖아."

즉답이었다. 물러섬이 없었다. 피비는 상대가 어떤 결로 비트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자기가 한 말의 핵심은 놓치지 않았다. 맞잖아. 예쁘다고 했고, 반짝인다고 했고, 좋아한다고 했다. 그럼 된 거였다. 그 직선적인 결론 앞에서 10은 더 비틀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는 피비 쪽으로 상체를 아주 조금 기울인 채 손을 내렸다. 손가락이 그녀의 머리카락 끝에 남은 정전기를 가볍게 털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엉뚱하게도 오래전 군 병원 냄새가 스쳐 갔다. 소독약과 금속 트레이와 멀리서 들리던 구두 밑창 소리. 그때의 얼굴들은 대부분 너무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더 견디기 어려웠다. 애써 못 본 척하는 친절은 때때로 노골적인 호기심보다 성가셨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여자는, 상처를 보기만 하지 않고 만지고, 차갑다 말하고, 은박 같다며 결론짓고, 다음에는 색깔까지 골라주겠다고 한다. 이 무례함은 기이하게도 병원보다 덜 병적이었다. 무심코 가슴 한복판 어딘가가 한 칸 밀리는 감각이 있었다. 작고, 그러나 분명했다.

피비는 그의 얼굴에서 시선이 떨어지자마자 곧장 다른 생각으로 뛰어갔다. 그녀는 책상 쪽으로 몸을 반쯤 틀어, 꺼진 단말기와 옆에 놓인 얇은 공구 케이스를 번갈아 봤다. 그러다가 다시 10을 봤다. 연결은 그녀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눈도 부품이고, 공구로 손볼 수도 있고, 색도 바꿀 수 있다. 그러면.

12 | "나중에 6한테 물어봐도 돼? 색 있는 거 주문되나."

그 질문에는 6에 대한 막연한 신뢰와, 10에 대한 허락 구하기가 뒤섞여 있었다. 6은 몸 안팎의 이상한 것들을 다루는 사람이고, 10의 눈도 가끔 봐 주고, 그러니까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계산. 10은 그 발상을 들으며 눈가가 약간 좁아졌다. 6이 이 대화에 끼면 재미있어할 것이 뻔했다. 지나치게. 그리고 그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10 | "You may ask. He'll enjoy it far too much."
(물어보는 건 상관없어. 그 인간이 지나치게 즐거워할 뿐이지.)

말끝이 마른 쪽으로 휘었다. 6의 웃는 얼굴과 해부학적 열정이 겹친 상상을 짧게 떨쳐내듯, 10은 소파 팔걸이 쪽으로 몸을 기대며 다리를 바꿨다. 그 작은 움직임에 피비의 무릎도 자연스럽게 밀려 그의 허벅지에 닿았다. 가까운 거리 때문에 서로의 체온이 천을 통과해 금방 섞였다. 피비는 자세를 바로잡는 대신 아예 편한 방향으로 틀어앉았다. 거의 반쯤 그의 무릎을 차지하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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