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I. 스파게티 학살 사건
그것은 2080년 7월 어느 오후, 섹터 E 간이 주방에서 벌어졌다. 10은 커피를 내리러 들어갔을 뿐이었다. 목격은 우발적이었고, 충격은 의도적이었다.
피비가 스파게티 건면 한 줌을 양손으로 쥐고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녀는 냄비 위에 면을 대고, 두 손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반으로 부러뜨렸다. 뚝. 뚝뚝. 면이 부러지는 소리가 주방 전체에 울렸다. 짧아진 면 조각이 끓는 물 속으로 떨어져 사방으로 튀었다. 10은 모카포트를 내려놓은 자세 그대로 굳었다. 손이 멈추는 데 걸린 시간보다, 입이 열리는 데 걸린 시간이 더 길었다.
10 | "What are you doing."(뭘 하고 있는 거야.)
목소리에 물음표가 빠져 있었다.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피비는 고개를 돌리며 남은 면 반 줌을 보여 줬다.
12 | "삶는 거."
10 | "You broke it."(부러뜨렸잖아.)
12 | "냄비에 안 들어가니까."
10 | "You push it down as it softens. That's the entire principle."(물러지면 밀어 넣는 거야. 그게 원리의 전부라고.)
12 | "이게 빨라."
10은 싱크대 앞에 서서 냄비 안을 들여다봤다. 절단면이 고르지도 않은 짧은 면 조각들이 물 위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눈앞의 광경은 바뀌지 않았다. 피비는 이미 두 번째 줌을 꺾으려 하고 있었다.
10 | "Phoebe. Stop."(피비. 멈춰.)
12 | "왜."
10 | "Because I'm asking nicely, and I won't ask twice."(지금 착하게 부탁하는 거고, 두 번은 안 할 거야.)
피비는 면을 내려놓았다. 다만 이미 부러진 면은 냄비 속에서 잘 삶아지고 있었고, 10은 그날 저녁 그 끔찍한 짧은 파스타를 묵묵히 먹지 않았다. 자기 몫을 새로 삶았다.
II. 캐첩 소동
같은 주, 안전지대 외곽의 작은 트라토리아에서 식사했을 때의 일이다. 피비는 까르보나라를 한 입 먹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테이블 위를 둘러보더니, 주방 쪽을 향해 손을 들었다.
12 | "캐첩 있어요?"
10의 포크가 접시 위에서 정지했다. 그의 시선이 피비에게로 천천히 옮겨졌다. 주변 테이블의 이탈리아인 두 명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웨이터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 척했지만, 'ketchup'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킨 공기의 변화는 분명했다.
10 | "No."(안 돼.)
12 | "왜. 좀 싱거운데."
10 | "Then add salt."(그럼 소금을 쳐.)
12 | "캐첩이 맛있잖아."
10 | "Ketchup does not go on pasta. Not in this country. Not in any country. Not on this planet."(캐첩은 파스타 위에 올리는 게 아니야. 이 나라에서도 안 되고. 어느 나라에서도 안 되고. 이 행성에서도 안 돼.)
피비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12 | "파마산 치즈는?"
10은 입을 다물었다. 까르보나라에 파마산을 추가하겠다는 제안이 캐첩보다 나은지 잠깐 계산했다. 이미 페코리노 로마노로 맛을 잡은 접시 위에 파마산을 더 뿌리면. 죽지는 않겠지만, 이 구역 셰프의 자존심은 확실히 죽는다.
10 | "Eat it as it is."(그냥 있는 그대로 먹어.)
12 | "맛없으면?"
10 | "Suffer."(참아.)
피비는 입을 삐죽거렸지만 결국 포크를 들었다. 10은 혹시나 그녀가 가방에서 소스를 꺼낼까 봐 식사가 끝날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III. 나이프 피자 사건
피체리아에서의 일이었다. 마르게리타가 나왔다. 피비는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들고, 피자를 정중앙에서부터 바둑판 눈금처럼 잘라 먹기 시작했다. 한 조각, 두 조각, 세 조각. 정사각형에 가까운 작은 덩어리들이 접시 위에 나열되었다. 치즈가 늘어지며 끊기고, 모차렐라 조각이 접시 가장자리에 떨어졌다. 10은 자기 피자를 손으로 접어 먹던 도중 그 광경을 목격하고 씹는 동작을 멈췄다.
10 | "Are you performing surgery."(수술 중이야?)
12 | "뜨거워서."
10 | "Fold it."(접어서 먹어.)
12 | "접으면 흘러."
10 | "That's part of the experience."(그게 경험의 일부야.)
12 | "손 더러워지잖아."
10 | "You handle biohazard waste with bare hands."(넌 맨손으로 생화학 폐기물 만지잖아.)
12 | "그건 장갑 끼고."
10은 반박이 기술적으로 맞아서 조용히 피자를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피비는 승리한 줄 알고 계속 나이프로 피자를 잘랐다. 옆 테이블의 노인이 피비 쪽을 오래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10은 그 시선을 등으로 받으며, 본인이 이 아이의 보호자로 보인다는 사실에 대해 아주 잠깐 원한을 품었다.
IV. 파인애플 피자
안전지대의 새 식당가를 걷고 있을 때, 피비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가게 앞 칠판을 가리켰다. 'PIZZA HAWAII — NEW!'라고 적혀 있었다. 체리 토마토와 파인애플 조각이 그려진 옆에 작은 하와이안 셔츠 그림이 붙어 있었다. 관광객 대상 가게가 분명했다. 10은 그 칠판을 보자마자 보폭을 넓혔다.
12 | "파인애플 피자 있다. 먹으러 가자."
10은 멈추지 않았다. 피비가 소매를 잡아당겼다.
12 | "체사레. 파인애플."
10 | "I saw it."(봤어.)
12 | "그럼 가자."
10 | "I'd rather eat a landmine."(지뢰를 먹는 게 낫겠어.)
12 | "왜. 달잖아. 나 단 거 좋아하는 거 알잖아."
10 | "Phoebe. Pineapple on pizza is not food. It's a geopolitical offense."(피비. 피자 위의 파인애플은 음식이 아니야. 지정학적 모욕이지.)
12 | "맛있으면 되잖아."
10은 피비의 손을 소매에서 떼며 진심으로 심각한 얼굴을 했다. 이 남자가 밀그램 테러리스트를 마주할 때보다 더 단호한 표정이었다.
10 | "We are not entering that establishment. I have a reputation."(저기 안 들어가. 난 평판이 있어.)
12 | "나는 평판 없는데."
10 | "Precisely the problem."(그게 바로 문제야.)
피비는 결국 끌려갔지만, 그 뒤로 '파인애플 피자'를 무기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10이 무언가를 거부할 때마다 "그럼 파인애플 피자 먹으러 가자"를 협박처럼 꺼냈고, 10은 매번 이를 악물고 양보했다.
V. 와인 외교 참사
어느 저녁, 10의 개인실에서의 일이다. 10은 전날 밤에 마시다 남긴 이탈리아산 바롤로Barolo 반 병과, 작전 보급에 섞여 들어온 프랑스산 보르도Bordeaux 한 병을 테이블에 두고 있었다. 피비가 맛이 궁금하다고 했을 때, 10은 약간의 방심 속에서 한 모금씩 허용했다. 보르도를 먼저 마시고, 바롤로를 마셨다. 피비는 입안에서 굴리지도 않고 삼킨 뒤 말했다.
12 | "어제 거보다 이게 맛있어."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보르도였다.
10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과정은 드물게 관측되는 현상이었다. 입꼬리가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표정 전체가 일시에 평평해졌다. 그는 보르도 잔을 피비 손에서 조용히 뺏었다.
10 | "Say that again."(다시 한번 말해 봐.)
12 | "이 빨간 게 더 맛있다고."
10 | "In my room. Drinking my wine. You're telling me French wine is better."(내 방에서. 내 와인을 마시면서. 프랑스 와인이 더 낫다고 말하는 거야.)
12 | "맞아."
10 | "Phoebe."(피비.)
12 | "왜, 솔직한 거잖아."
10은 보르도 병을 조용히 캐비닛 안에 넣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바롤로만 다시 꺼내 자기 잔에 따랐다. 그 뒤 한동안 프랑스산 와인은 그의 개인실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피비는 왜 빨간 맛있는 술이 사라졌는지 알지 못했다.
VI. 에스프레소 희석 사건
요새 내 간이 주방, 아침. 10이 모카포트로 내린 에스프레소를 데미타세에 따라 건네자 피비는 한 모금 마시고 혀를 내밀었다.
12 | "써."
10 | "It's espresso."(에스프레소니까.)
12 | "뜨거운 물 부어서 아메리카노로 만들어 줘."
10의 손에 들린 데미타세가 공중에서 정지했다. 그는 피비를 정면으로 봤다. 그녀의 얼굴에는 악의가 전혀 없었다. 그저 쓴 것이 싫고, 연한 것이 좋고, 자기가 아는 방식으로 달라고 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무구한 요청이 이 남자의 어떤 근본적인 선을 밟았다.
10 | "No."(안 돼.)
12 | "왜. 물만 넣으면 되는데."
10 | "That's not coffee. That's a confession of defeat."(그건 커피가 아니야. 항복 선언이지.)
12 | "2가 늘 그렇게 해서 마시던데."
10 | "2 is American. That explains everything and excuses nothing."(2는 미국인이잖아. 설명은 전부 되지만 변명은 하나도 안 돼.)
피비는 결국 설탕을 세 스푼 넣은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10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입 안에서 무언가를 삼켰다. 아마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된 탄식을.
VII. 비데 사건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전지대의 호텔에서 하룻밤 묵었을 때.
아침에 피비가 욕실에서 나오며 물었다.
12 | "체사레, 변기 옆에 있는 낮은 세면대 뭐야?"
10 | "…Quale."(……뭐라고.)
12 | "작은 거. 거기서 발 씻었어."
10은 침대에 앉은 자세 그대로 공기 속의 한 점을 응시했다. 그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전장에서 폭발물을 해체할 때보다 더 고요한 얼굴이었다. 그 고요함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신호였다.
10 | "That is a bidet."(그건 비데야.)
12 | "비데?"
10 | "It's for washing. Not your feet."(씻는 거야. 발 말고.)
12 | "발도 씻을 수 있잖아."
10 | "Phoebe."(피비.)
12 | "왜? 깨끗해졌는데."
10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고, 셔츠 단추 맨 위를 잠그고, 다시 풀었다. 그리고 매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10 | "We are never discussing this again."(이 얘기는 다시는 안 할 거야.)
피비는 왜 안 되는지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10은 그날 호텔 체크아웃 시 프론트 데스크 직원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사후 보고
이 모든 사건을 겪고 난 뒤, 섹터 E 휴게실에서 9가 피비에게 "이탈리아 적응 잘 하고 있냐"라고 물었을 때, 10은 커피잔 너머로 9를 봤다. 9는 그 시선 안에서 뭔가 단단하고 차가운 것을 읽었고, 현명하게도 화제를 돌렸다.
피비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12 | "응, 체사레가 다 알려 줘."
10은 커피를 마셨다. 에스프레소였다. 물은 넣지 않았다.
VIII. 카푸치노 참사
점심 식사 직후의 트라토리아. 피비는 식후 음료를 고르며 벽에 붙은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짚어 내려갔다. 에스프레소, 마키아토, 카푸치노. 그녀의 손가락이 카푸치노 위에서 멈추었다.
12 | "카푸치노 마실래."
10은 접시 위의 빵 부스러기를 냅킨으로 닦다가 손을 멈추었다. 오후 한 시 반이었다.
10 | "No."(안 돼.)
12 | "왜?"
10 | "It's past noon."(정오 지났으니까.)
12 | "커피에 시간 있어?"
10 | "Cappuccino is a morning drink. After lunch, espresso. That's the rule."(카푸치노는 아침 음료야. 점심 후엔 에스프레소. 그게 규칙이야.)
12 | "누가 정한 건데."
10 | "Italy."(이탈리아가.)
피비는 10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아니라,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다. 우유가 든 커피를 마시는 데 시간 제한이 있다는 개념 자체가 그녀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웨이터를 향해 다시 손을 들었다.
12 | "Un cappuccino, per favore."
발음은 형편없었지만 의미는 전달되었다. 웨이터가 피비를 보고, 10을 보고, 다시 피비를 봤다. 10은 이마를 손바닥으로 누르며 턱으로 아주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가가 아니라 포기였다. 카푸치노가 나왔을 때 옆 테이블의 남자가 시계를 확인하는 동작을 했다. 10은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며, 자기가 이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로 한 선택에 대해 짧고 격렬한 후회를 했다.
피비는 거품을 입술 위에 묻힌 채 웃었다.
12 | "맛있어. 왜 아침에만 먹어, 하루 종일 먹으면 되잖아."
10 | "Because some things have order. Timing. Dignity."(어떤 것들은 질서가 있으니까. 타이밍. 품위.)
12 | "커피한테?"
10 | "Especially coffee."(특히 커피한테.)
피비는 고개를 갸웃한 채 카푸치노를 끝까지 마셨다. 10은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에 비우고, 잔을 소서에 내려놓을 때 세라믹이 세라믹에 부딪히는 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날카로웠다.
IX. 젤라토 외교 위기
안전지대의 젤라테리아 앞이었다. 진열장 안에 줄지어 놓인 젤라토의 색감이 피비의 눈을 즉각 사로잡았다. 10은 그녀가 유리에 코를 박기 전에 어깨를 잡아 세웠다. 주문은 10이 하려 했으나 피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
12 | "저거. 초록색이랑 파란색이랑 빨간색."
10 | "Choose two. Maximum."(두 가지 골라. 최대.)
12 | "왜. 세 개 넣으면 안 돼?"
10 | "Pistachio, stracciatella, and strawberry don't belong in the same cup. They clash."(피스타치오, 스트라치아텔라, 딸기는 같은 컵에 안 어울려. 맛이 싸우거든.)
12 | "다 달잖아."
10은 눈을 감았다 떴다. '다 달잖아'라는 세 글자가 젤라토 맛 조합의 모든 원칙을 아주 깔끔하게 소각했다. 그는 참을성 있게 설명을 시도했다. 견과류 베이스와 과일 베이스는 분리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 풍미의 층위가 서로를 죽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 피비는 열심히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서 말했다.
12 | "그래도 세 개 먹을래."
10은 젤라테리아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직원은 관광객을 오래 상대한 사람의 연마된 무표정을 쓰고 있었다. 10은 자기 몫으로 피스타치오 하나만 시켰다. 피비의 컵에 세 가지 색이 담겼을 때, 그녀는 위에서부터 스푼으로 전부 섞어 버렸다. 연한 보라빛 죽 같은 것이 되었다. 10은 자기 피스타치오 젤라토를 한 입 먹으며 그 광경에서 시선을 돌렸다. 돌릴 수밖에 없었다.
12 | "맛있어. 먹어 봐."
피비가 죽이 된 젤라토를 스푼에 떠서 내밀었다. 10은 스푼을 손등으로 밀어냈다.
10 | "I'd rather debrief with Milgram."(밀그램이랑 사후보고를 하는 게 낫겠어.)
12 | "그건 뭐야?"
10 | "Exactly."(바로 그거야.)
X. 빵 침수 사건
아침 식사. 안전지대의 바에서 코르네토cornetto와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10은 코르네토를 접시에서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피비는 코르네토를 받아들고 유심히 살펴보더니, 에스프레소 잔 위로 가져가 찍어 먹으려 했다. 크루아상을 커피에 적시는 프랑스식 방법이었다. 문제는 여기가 프랑스가 아니라는 것이었고, 코르네토는 크루아상이 아니라는 것이었고, 10은 이탈리아인이라는 것이었다.
코르네토 끝이 에스프레소 표면에 닿기 직전, 10의 손이 피비의 손목을 잡았다. 아주 정확하고 빠른 동작이었다. 전장에서 기폭 장치 와이어를 잡는 속도와 같았다.
10 | "Don't."(하지 마.)
12 | "왜."
10 | "Cornetto is not for dipping."(코르네토는 찍어 먹는 게 아니야.)
12 | "빵이잖아."
10 | "It's a cornetto."(코르네토야.)
12 | "빵이랑 뭐가 달라."
10 | "Everything."(전부 다.)
10은 손목을 놓고, 정면을 보고, 커피를 마셨다. 피비는 그가 시선을 돌린 틈에 코르네토 끝을 아주 살짝 에스프레소에 담갔다. 10은 잔에서 입술을 뗀 채 옆을 봤다. 피비의 코르네토 끝이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10은 봤다. 분명히 봤다. 하지만 그는 그날 아침, 보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모든 전투에는 전략적 후퇴가 필요하다.
피비는 그 적신 부분을 씹으며 만족한 표정이었다.
12 | "맛있는데."
10은 대답하지 않았다. 커피가 쓴 것이 원두 탓인지 상황 탓인지 구분이 안 됐다.
XI. 손짓의 오독
거리에서 걷고 있을 때였다. 10이 피비에게 뭔가를 설명하며 습관적으로 이탈리아식 손짓을 했다. 손가락 끝을 모아 위로 향하게 하고 가볍게 흔드는 동작. '뭘 원하는 건데?'라는 뜻의 전형적인 제스처였다. 피비는 그 손짓을 한참 바라보더니, 똑같이 따라 했다. 다만 방향이 달랐다. 피비는 그 손짓을 길 건너편 가게 주인을 향해 했다.
가게 주인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10이 피비의 손을 아래로 내렸다.
10 | "That gesture means something specific here."(그 손짓은 여기서 특정한 의미가 있어.)
12 | "체사레가 했잖아."
10 | "I was talking to you. You just aimed it at a stranger."(난 너한테 한 거야. 넌 모르는 사람한테 겨눈 거고.)
12 | "귀엽지 않아? 이렇게."
피비는 다시 손가락을 모으며 흔들었다. 10은 그 손을 잡아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코트 주머니가 아니라 피비의 반바지 주머니에.
10 | "Keep them there."(거기 넣어 둬.)
12 | "답답해."
10 | "Better than an international incident."(국제적 분쟁보다 낫잖아.)
피비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았지만, 이후에도 간간이 그 손짓을 연습했다. 소파에서, 식사 중에, 심지어 6의 진료실에서도. 10은 매번 발견할 때마다 그 손을 내렸고, 피비는 매번 이유를 잊었다.
XII. 성당 사진 사건
안전지대 외곽의 오래된 성당 앞을 지나갈 때였다. 전쟁의 흔적이 벽면에 남아 있었지만 내부는 복원되어 있었고, 미사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피비는 성당 입구에서 멈추어 내부를 들여다보더니 걸어 들어갔다. 10은 뒤따라 들어가며 그녀의 팔을 잡았다.
10 | "Hat off."(모자 벗어.)
피비는 10에게서 빌린 캡을 쓰고 있었다. 벗었다. 10은 피비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확인했다. 짧은 반바지와 헐렁한 티셔츠. 성당 입장에 적절한 차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안에 들어와 있었고, 미사 중이 아닌 시간이었으므로 그는 코트를 벗어 피비 어깨에 걸쳤다.
피비는 프레스코화를 올려다보며 입을 벌리고,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에 눈이 넓어졌다. 그 반응은 순수했다. 예쁜 것을 보면 입이 벌어지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감각의 인간. 그런데 그녀는 단말기를 꺼내 플래시를 켜고 제단을 향해 사진을 찍으려 했다.
10 | "Flash off."(플래시 꺼.)
이미 늦었다. 흰 빛이 어두운 성당 내부를 한 번 가르고 사라졌다. 앞줄에 앉아 있던 여성 한 명이 뒤를 돌아봤다. 10은 손을 들어 사과의 뜻으로 가볍게 머리를 숙이며 피비의 단말기를 뺏었다.
12 | "왜. 예뻐서 찍은 건데."
10 | "You don't use flash in a church."(성당에서 플래시 안 켜.)
12 | "어둡잖아."
10 | "That's the point."(그게 요점이야.)
12 | "안 보이는 게?"
10 | "Silence. Respect. The dark is part of it."(고요함. 존중. 어두운 것도 일부야.)
피비는 10의 말을 듣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녀에게 어둠은 늘 위험한 것이었다. 데드존의 어둠, 격리실의 어둠, 의식이 끊기기 직전의 어둠. 그런데 이 남자는 어둠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해는 못 했지만 기억에는 남았다.
12 | "체사레는 이런 데 자주 와?"
10 | "Not anymore."(더 이상은 안 와.)
12 | "왜?"
10 | "Ran out of things to ask for."(부탁할 게 바닥나서.)
피비는 그 말이 농담인지 진심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대신 플래시 없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한 번 더 찍었다. 어둡고 흐릿한 사진이 찍혔다. 피비는 그 사진을 보며 "안 보여"라고 말했고, 10은 "그래"라고만 대답했다. 그리고 피비를 데리고 성당을 나왔다. 코트는 아직 피비 어깨에 있었고, 피비는 벗으려 하지 않았다.
XIII. 총체적 진단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하나의 패턴이 보였다. 피비는 규칙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규칙이라는 개념이 감각보다 후순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맛있으면 되고, 예쁘면 되고, 편하면 되고, 당장의 결과가 나쁘지 않으면 과정은 관계없었다. 그것이 문화적 맥락이든, 타인의 감정이든, 이탈리아 반도의 수백 년 된 자존심이든.
그리고 10은 매번 저지하고, 설명하고, 포기하고, 다시 저지했다.
포기한 척 돌아서면서도, 다음날이면 또 "여기서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보호인지, 습관인지, 아니면 자기 나라의 마지막 자존심을 이 한 사람 앞에서라도 지키려는 무의미한 전투인지 본인도 잘 모르는 채로. 피비는 그 전부가 좋았다. 이유가 납득이 되어서가 아니라, 체사레가 자기한테 뭔가를 알려 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누군가가 자기에게 세상이 이렇게 돌아간다고, 여기서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끈기 있게 반복해서 말해 주는 경험은 그녀에게 드문 것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알려 주는 사람. 그것만으로 그녀는 다음에도 틀릴 것이고, 10은 다음에도 고칠 것이었다.
9가 복도에서 10에게 물었다.
9 | "How's the culture exchange program going?"(문화 교류 프로그램은 어떻게 되어 가?)
10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10 | "She used a bidet as a footbath, broke my spaghetti, ordered cappuccino at two in the afternoon, and told me French wine tastes better. In my room."(비데를 족욕기로 쓰고, 내 스파게티를 부러뜨리고, 오후 두 시에 카푸치노를 시키고, 프랑스 와인이 더 맛있다고 했어. 내 방에서.)
9는 입을 벌렸다가, 현명하게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10은 그날 저녁 개인실에 돌아와 바롤로를 한 잔 따랐다. 피비는 소파에서 이미 잠들어 있었다. 손에는 그가 빼앗았다가 돌려준 단말기가 쥐어져 있었고, 화면에는 성당에서 찍은 흐릿한 스테인드글라스 사진이 떠 있었다. 어둡고, 거의 알아볼 수 없고, 그런데도 삭제하지 않은 사진.
10은 와인잔을 기울이며 그 화면을 잠깐 내려다봤다. 그리고 코트를 가져다 피비 위에 덮었다. 매번 회수하지 못하는 코트였다.
10 | "Buonanotte, disastro."(잘 자, 재앙아.)
방 안은 조용했고, 와인은 이탈리아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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