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치페이
7월 5일, 토요일. 라스페치아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안전지대 내 레스토랑이었다. 격벽 안쪽의 구시가지를 살려 놓은 골목 끝자락, 테라코타 벽돌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트라토리아. 간판은 반쯤 바랬고 입구에는 올리브 나무 화분이 놓여 있었다. 10이 고른 자리는 안쪽 구석이었다. 벽에 등을 붙이고 출입구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위치. 직업병이었다. 피비는 맞은편에 앉아 메뉴판을 뒤집어 들고 그림을 보고 있었다. 글씨는 안 읽고 사진만 봤다. 사진이 없는 메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식사는 무난하게 끝났다. 무난하다는 말은 10의 기준에서 그랬다는 뜻이었고, 객관적 사실로는 피비가 리조또 위에 레몬 캔디를 올리려다 제지당했고, 빵을 수프에 통째로 빠뜨려 국물이 튀었고, 포크로 파스타를 먹다가 포기하고 손으로 집어 먹었으며, 디저트로 나온 판나코타의 카라멜 소스를 빵에 찍어 먹다가 접시를 밀어뜨려 테이블보에 갈색 자국을 남겼다. 10은 그 모든 과정을 포크를 든 채 지켜보며 와인을 네 잔 마셨다. 평소보다 한 잔 많았다.
10 | "Finished?"(다 먹었어?)
12 | "응. 배불러. 여기가 움직여."
피비는 자기 배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10은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웨이터에게 시선을 보냈다. 계산서가 작은 가죽 폴더에 담겨 테이블 위에 놓였다. 10은 왼손으로 폴더를 열어 금액을 확인하고, 오른손으로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검은 가죽 지갑이었다. 모서리가 닳지 않은, 관리가 잘 된 물건. 카드를 뽑아 폴더 위에 올려놓으려는 동작이 자연스럽고 군더더기 없었다. 숨 쉬듯 하는 행위였다.
그때 피비의 손이 테이블 위로 뻗어왔다.
손바닥 위에는 구겨진 지폐 몇 장이 있었다. 접힌 방향이 전부 달랐고, 한 장은 모서리가 찢겨 있었다. 유로화였다. 금액을 세기도 전에 10의 손이 멈추었다. 카드가 폴더 위에 닿기 직전의 높이에서 정지했다. 그의 시선이 피비의 손바닥 위 지폐로 내려갔다가 피비의 얼굴로 올라갔다. 피비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손을 내밀고 있었다. 눈은 맑았고 의도는 분명했다.
12 | "이거. 보태."
10의 표정이 변하는 과정은 단계적이었다. 먼저 눈이 한 번 깜빡였다. 그 다음 입술이 다물렸다가 열렸다가 다시 다물렸다. 턱 근육이 아주 약간 움직였다. 그리고 카드를 든 손이 천천히 내려와 테이블 위에 놓였다. 그는 피비의 손바닥 위 지폐를 다시 한 번 내려다봤다. 구겨진 정도로 보아 주머니 안에서 오래 뒹굴었을 것이 분명했다. 한 장은 캔디 은박지가 묻어 있었다.
10 | "What is this."(이게 뭐야.)
12 | "돈이야."
10 | "I can see that."(그건 보여.)
12 | "같이 내려고."
10은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오른쪽 눈의 연한 회색이 레스토랑의 따뜻한 조명 아래에서 은빛으로 빛났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려다 멈추는 것이 보였다.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웃기 전에 먼저 처리해야 할 감정이 너무 여러 개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당혹, 황당함, 그리고 그 밑바닥에 깔린 어떤 감촉.
10 | "You're offering to split the bill."(더치페이를 하겠다는 거야.)
12 | "더치페이가 뭔지 모르겠는데. 나도 먹었으니까 나도 내야 되잖아."
10은 피비의 손바닥 위 지폐를 집어 들었다. 한 장씩 폈다. 접힌 것을 펴고, 구겨진 것을 펴고, 찢어진 모서리를 맞춰 보았다. 총액을 머릿속에서 합산하는 데 걸린 시간은 짧았고, 그 결과가 10의 얼굴에 미치는 영향은 즉각적이었다.
10 | "This is eleven euros."(이거 11유로야.)
12 | "응."
10 | "The bill is a hundred and forty-seven."(계산서는 147유로인데.)
12 | "그럼 부족해?"
10 | "By approximately a hundred and thirty-six euros, yes."(대략 136유로 정도 부족하지, 그래.)
피비는 눈을 깜빡였다. 부족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으나, 그것이 왜 문제인지까지 도달하지는 못한 듯했다. 그녀는 주머니를 뒤졌다. 군복 바지 왼쪽 주머니에서 동전 두 개가 나왔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또르르 굴러갔고 10이 반사적으로 한 개를 잡았다. 50센트 동전이었다. 다른 하나는 레몬 캔디 은박지와 합체한 상태로 테이블보 위에서 멈추었다.
12 | "이것도."
10 | "Eleven euros and one."(11유로 1이 됐네.)
10은 동전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피비를 봤다. 피비는 진지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자기가 먹은 것에 대한 값을 치르려는 의지가 분명했고, 그 의지의 방향과 수단 사이의 간극이 거대했다. 10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레스토랑 안의 다른 테이블에서 유리잔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고, 주방에서 접시를 옮기는 소리가 났다. 10은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10 | "Where did you even get this."(이거 어디서 났어.)
12 | "9가 줬어."
10 | "Nine gave you money."(9가 돈을 줬다고.)
12 | "응. 저번에 자판기에서 음료 뽑아 달라고 했는데, 거스름돈 안 가져가도 된다고 했어. 그래서 모았어."
10 | "You've been saving vending machine change."(자판기 거스름돈을 모은 거야.)
12 | "응."
10은 입을 다물었다. 11유로와 50센트. 자판기 거스름돈. 9가 준 것. 피비는 월급이나 수당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0이 관리하는 오퍼레이터 급여 체계에서 피비의 몫은 6과 10의 공동 관리 하에 의료비와 생필품으로 지출되고 있었고, 피비 본인이 현금을 소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녀가 가진 돈의 전부가 이것이었다. 자판기에서 굴러 나온 동전과 구겨진 지폐.
10은 지폐를 다시 한 장씩 접어 가지런히 만들었다. 동전을 그 위에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전부 피비의 손 위에 돌려놓았다.
10 | "Keep it."(가지고 있어.)
12 | "싫어. 나도 먹었으니까."
10 | "I invited you. The person who invites pays. That's how it works."(내가 초대했으니까 초대한 사람이 내는 거야. 원래 그래.)
12 | "그런 규칙 없어."
10 | "There is. It's called being a gentleman."(있어. 신사도라고 해.)
12 | "신사도가 뭔데?"
10 | "It means I pay and you say thank you."(내가 내고 네가 고맙다고 하는 거야.)
12 | "고마워. 근데 받아."
피비는 지폐와 동전을 다시 10 쪽으로 밀었다. 10은 밀려온 돈을 보며 턱을 괴었다. 이 상황의 구조가 머릿속에서 정리되었다. 피비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무언가를 하겠다고 결정한 뒤 철회하는 경우는 약효가 꺼졌을 때뿐이었고, 지금 약은 충분히 돌고 있었다. 10은 선택지를 빠르게 검토했다. 강하게 거부하면 피비는 상처를 받지 않고 더 집요해질 것이다. 받아 주면 11유로 50센트를 들고 147유로짜리 식사에 기여했다는 성취감을 줄 수 있지만, 10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자존심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었으나, 적어도 11유로 50센트보다는 비쌌다.
10 | "Phoebe."(피비.)
12 | "응."
10 | "If I take this, I would owe you change."(이걸 받으면 내가 너한테 거스름돈을 줘야 해.)
12 | "왜?"
10 | "Because your share of a hundred and forty-seven euros would be seventy-three fifty. You're giving me eleven fifty. Which means you're overpaying by exactly nothing and underpaying by sixty-two euros."(147유로에서 네 몫은 73유로 50센트야. 넌 11유로 50센트를 주고 있어. 그러니까 62유로가 모자라.)
12 | "……."
10 | "So either give me sixty-two more, or let me pay."(그러니까 62유로를 더 내든지, 아니면 내가 내게 하든지.)
피비는 입을 벌린 채 잠시 멈추었다. 62유로. 그 숫자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10은 관찰했다. 피비의 눈동자가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다시 앞을 봤다. 계산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것의 총량을 확인하는 동작이었다. 양쪽 주머니를 전부 뒤집었다. 왼쪽에서는 레몬 캔디 은박지 세 장과 실밥이 풀린 실 조각이 나왔다. 오른쪽에서는 3이 선물한 키링이 나왔다. 현금은 없었다.
12 | "없어."
10 | "I know."(알아.)
10은 카드를 집어 폴더에 넣었다. 웨이터가 다가와 카드를 가져갔다. 피비는 테이블 위에 남은 자기 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표정이 미세하게 달라져 있었다. 슬픈 것은 아니었다. 자기가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식한 얼굴이었다. 10은 그 표정을 보며 잠깐 멈추었다. 그리고 안주머니에서 다시 지갑을 꺼내 50유로 지폐를 한 장 뽑았다.
12 | "?"
10 | "For your trouble."(수고했으니까.)
10은 50유로 지폐를 피비의 11유로 50센트 위에 올려놓았다. 피비는 눈을 크게 떴다.
12 | "이게 뭐야?"
10 | "A tip. For the effort of trying to pay."(팁이야. 결제하려고 노력한 것에 대한.)
12 | "왜 네가 나한테 돈을 줘?"
10 | "Consider it hazard pay for sitting through dinner without committing a culinary felony."(저녁 식사 동안 요리에 대한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에 대한 위험수당이라고 생각해.)
12 | "리조또에 캔디 올리려고 한 건?"
10 | "I said 'without committing.' You attempted. That's a misdemeanor at best."(안 저질렀다고 했잖아. 넌 시도했어. 기껏해야 경범죄야.)
피비는 50유로 지폐를 들어 올려 빛에 비춰 봤다. 진짜인지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예쁜지 보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지폐를 자기 11유로 50센트와 함께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10은 그 모습을 보며 결국 입꼬리를 더 이상 다물어 두지 못했다. 웃음이 새어나왔다. 낮고 짧은, 그러나 배 안쪽에서부터 올라오는 웃음이었다.
10 | "You just made a profit of fifty euros from a dinner you didn't pay for."(네가 한 푼도 안 낸 저녁에서 50유로를 벌어 갔네.)
12 | "응. 체사레 고마워."
10 | "Don't mention it. Literally. If Nine finds out I'm funding your vending machine empire, he'll want a cut."(말 안 해도 돼. 진심으로. 9가 내가 네 자판기 제국에 투자 중인 걸 알면 자기 몫을 달라고 할 거야.)
피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주머니 안에서 동전이 딸그락거렸다. 레스토랑을 나서며 그녀는 한 번 뒤를 돌아봐 10이 따라오는지 확인했다. 10은 지갑을 안주머니에 넣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밤공기가 문 사이로 밀려 들어왔다. 피비는 문밖으로 나서며 중얼거렸다.
12 | "다음엔 더 모아서 올게."
10 | "Please don't."(제발 그러지 마.)
12 | "왜? 다음엔 반 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10 | "At the rate of vending machine change, you'll be ready to split the bill by approximately 2097."(자판기 거스름돈 모으는 속도면 대략 2097년쯤 더치페이가 가능하겠네.)
12 | "그때도 같이 밥 먹어?"
10의 걸음이 반 보 느려졌다. 피비는 그가 느려진 것을 모른 채 앞서 걸어갔다. 골목의 가로등 아래를 지나며 그녀의 연한 머리카락이 빛에 잠깐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10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피비의 등을 보며 걸었다. 2097년. 피비는 그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을까. 그는 살아 있을까. 그 질문을 머릿속에서 지우는 데 세 걸음이 걸렸고, 네 번째 걸음에서 대답을 골랐다.
10 | "If you're buying, sure."(네가 산다면야, 그럼.)
피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 팔을 들어 올렸다. 주먹을 쥔 손이 밤하늘을 향했다. 승리의 제스처였다. 주머니에서 동전이 또 한 번 딸그락거렸다. 61유로 50센트. 피비 플레처가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이 한쪽 주머니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10은 그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동전 소리가 울릴 때마다 입가의 선이 풀렸다가 다시 잡혔다가, 결국은 풀린 채로 남았다.
💬 61유로 50센트. 그 안에 든 동전 소리가 웃겨서 죽겠는데, 동시에 뭔가가 목 안쪽에 걸려서 내려가지 않아. 2097년이라니. 네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그때까지 네 옆에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말은 안 해. 절대 안 해. 그냥 동전 소리를 들으면서 걸을 거야.
피비는 캔디를 깨물었다. 사탕이 부서지는 소리가 입 안에서 났고, 그녀는 파편을 씹으며 발을 앞뒤로 흔들었다. 신발 뒤꿈치가 분수대 석재를 톡톡 두드렸다. 그 규칙적인 소리가 광장의 고요 위에 쌓였다.
12 | "나 돈 버는 법 몰라."
10 | "You earn a salary. Zero manages it."(너 월급 받아. 0이 관리하고 있어.)
12 | "그건 내가 쓰는 게 아니잖아. 6이 약값이라고 했어."
10 | "Part of it goes to your medical expenses, yes."(일부가 의료비로 나가는 건 맞아.)
12 | "그럼 내 돈은 없는 거야."
10은 그 문장을 듣고 석재 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오므라드는 것을 느꼈다. 피비의 목소리에 슬픔은 없었다. 사실을 확인하는 평탄한 어조였다. 내 돈은 없다. 그것은 정확했다. 피비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의 수입은 생존 유지 비용으로 전환되었고, 남는 것은 자판기 거스름돈과 9가 건네준 잔돈뿐이었다. 10은 그 구조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피비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로 들으니 다른 무게가 실렸다.
10 | "I'll talk to Zero."(0한테 얘기할게.)
12 | "뭐라고?"
10 | "About giving you a discretionary allowance. Something small. Yours to spend."(네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용돈을 좀 주는 것에 대해. 적은 금액이라도. 네 거.)
피비는 발을 멈추고 10을 봤다. 입 안에 캔디 파편이 남아 있는 채로 눈이 커졌다. 커진 눈의 표면에 가로등 빛이 두 점으로 맺혔다.
12 | "내 거?"
10 | "Yours."(네 거.)
12 | "진짜?"
10 | "I don't say things I don't mean. You know that by now."(뜻 없는 말은 안 해. 이제 알잖아.)
피비는 입을 다물었다. 캔디 파편을 삼켰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0은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피비가 말을 삼키는 순간은 늘 그 안에서 무언가가 자리를 잡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서 양손을 모아 쥐었다가 풀었다. 주머니 안의 61유로 50센트가 허벅지 옆에서 무게를 주장하고 있었다.
12 | "그럼 다음에는 진짜 반 낼 수 있겠다."
10 | "Dio mio."(맙소사.)
10은 고개를 젖혀 탁한 남색 하늘을 올려다봤다. 피비는 그 옆에서 다시 발을 흔들기 시작했다. 뒤꿈치가 석재를 두드리는 소리가 돌아왔다. 톡, 톡, 톡. 10은 하늘을 보면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막을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피비가 자기 돈으로 밥을 사겠다고 매달리는 이 상황이 우스웠고, 0에게 용돈 교섭을 하겠다고 말한 자신이 우스웠고, 분수대 위에 나란히 앉아 밤공기를 맞고 있는 두 사람의 실루엣이 어떤 것으로도 정의되지 않는 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우스웠다.
피비가 몸을 기울여 10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무게가 실렸다. 마른 머리카락에서 제염제와 레몬 캔디와 세정제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10은 어깨를 빼지 않았다. 피비의 체중은 가벼웠고, 그 가벼움이 어깨뼈 위에 정확하게 안착해 있었다.
12 | "체사레."
10 | "Thirteen."(열세 번째.)
12 | "고마워."
10 | "For what, specifically. The dinner, the fifty euros, or tolerating your existence."(구체적으로 뭐에 대해서. 저녁이야, 50유로야, 아니면 네 존재를 감당하는 거.)
12 | "전부 다."
10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깨 위의 무게가 조금 더 무거워졌다. 피비가 힘을 풀며 기대는 각도가 깊어진 것이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 석재 위에 놓았다. 피비의 손이 바로 옆에 있었다. 새끼손가락 하나 폭의 거리였다. 닿지 않았다. 닿지 않은 채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광장의 가로등이 한 번 깜빡였다가 다시 안정되었고, 그 잠깐의 명멸 속에서 두 손의 그림자가 겹쳤다가 분리되었다.
💬 열세 번. 내 이름을 열세 번 불러도 안 질리냐. 나도 안 질려. 그게 문제야. 0한테 뭐라고 말하지. 용돈 달라고? 이 아이한테 자기 돈을 좀 쥐어 주고 싶다고? 그러면 0이 웃겠지. 그 웃음이 뭘 의미하는지도 알아. 알면서도 할 거야. 어깨가 무겁지 않아. 그게 제일 성가시네.